비평

[하녀]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하녀>의 치명적인 약점 하나, 이 영화에는 쓸데없는 대사들이 너무 많다. 마치 영화의 허점을 하나 둘 가리기에 급급해보이는 대사들의 향연. 더욱 견딜 수 없던 것은 앞서 말한 넘치는 대사들이 쌍둥이를 임신한 부잣집 안주인 해라의 딸인 나미의 입에서 쏟아진다는 것이다. 나미는 두 부부의 첫 딸로, 은이가 저택에 하녀로 들어오면서부터 조금씩 입을 열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간다. 나미는 이기적이고 우악스러운 성격의 상류층 자녀가 아닌 예의바르고 은이에게도 다정한 일반적이고 똑 부러지는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나미는 부부와 은이 사이의 계층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서 나미는 굉장히 중요한 중간자 역할을 하고 있고, 은이가 저택에서 진심으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택의 새 하녀 '은이'와 저택의 맏딸 '나미'사이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 이상의 것을 나누게 되는 것이라 말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가족영화에서 가능한 플롯이다. 그리고 <하녀>는 애초부터 이에 부합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 속에서 나미는 어른스러움과 순진함을 동반하는 내레이터의 역할을 하지만 은이의 낙태 혹은 복수에 관련된 어떤 행동, 즉 '어른들의' 행동을 책임지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면 <하녀>에서 나미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신을 기어코 나미를 중앙에 놓아 끝내고 말았다. 필요 없는 대사, 필요 없는 인물들이 주를 이루는 와중에 영화는 산발적으로 흩어진다. 이 영화가 맥없이 끝나버리고 방향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암시는 이미 영화의 후반부, 은이가 임신사실을 알고 변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부각되어야 하는 인물은 나미가 아니라 늙은 하녀인 '병식'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본격적인 은이와 저택 간의 대결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돌연 카메라를 어린 아이인 '나미'에게로 돌린다.

<하녀>는 나미의 시선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의 엔딩이 정중앙에 놓인 나미로 맺음 된다는 것은 곧 영화가 비판하고자 했던 상류층의 습성이 고스란히 자식 세대에게로 이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는 바로 이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나미라는 아이를 끊임없이 부각시켰다. 하지만 나미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미성숙’을 설명하기를 원했고 영화가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변명하기엔 <하녀>는 너무 산발적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나미의 엔딩으로 영화의 끝을 맺는 것은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변명이었다는 것이다.

<하녀>는 은이가 일하는 식당 부근에서 자살하는 여인을 비춰주는 것으로 시작해 저택에서 스스로 목을 매는 은이의 모습으로 끝난다. 정확히 말하면 은이의 자살 신 이후 의도를 알 수 없는 컬트적인 엔딩 신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것을 굳이 배제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하녀>의 처음과 끝이 동일한 구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신은 북적한 먹자골목, 돌연 자살이 이루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온갖 유흥이 배설되는 도시의 단상을 비춘다. 특정 인물을 좇지 않고 그저 밤 도시의 단면만을 면밀하게 비추는 영화의 오프닝 신은 마치 어떤 비판적인 윤리를 강권하려는 듯이 존재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이 동일한 구조라면, 결국 은이와 도시의 욕망이 동일한 구조였다면 <하녀>는 조금 더 농밀하고 밀착되어 은이의 욕망을 잡아내었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에 실패했다. 때문에 <하녀>의 오프닝 신은 (심지어)영화가 추구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던 부의 세습, 혹은 뒤틀린 상류계층에 대한 악의와 비판의 잣대를 너무 절실하게 관객 앞에 들이미는 행동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았던 <하녀>의 욕망, ‘은이’의 욕망은,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기이하게 밀착해있는 장면들과 각각의 에피소드 사이에서 갈 길을 잃는다. 은이의 욕망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게 디렉션되지 않았던 <하녀>는 그 욕망을 가늠하는 잣대를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애초에 <하녀>의 주인공,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모든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인물이 윤여정(병식)으로 설정되었다면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인물들을 병합하고 꿰매는 역할을 하는 인물은 윤여정의 캐릭터다. 강제로 낙태시술을 당한 은이가 병식의 얼굴을 세게 후려치는 순간 병식은 자신의 지난 삶을 각성하고 저택을 떠날 각오를 한다. <하녀>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장면은 바로 이 부분, 젊은 하녀인 은이와 늙은 하녀인 병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치하는 장면이다.

 

 

 


병식의 캐릭터, 정확히 말해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존재가 두 계층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 경우의 <하녀>는 끔찍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등에 짊어지고 영화를 보더라도, <하녀>는 성공적인 리메이크 혹은 성공적인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영화가 김기영의 <하녀>를 원작으로 하지 않았다면, <하녀>의 몇 가지 소재만 가져와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상수의 <하녀>가 김기영의 <하녀>의 일부분을 차용했을 뿐이라 확정짓기에 이 영화는 너무 많은 것을 원작에 빚지고 있다. 문제는 앞서 말한 ‘빚을 진’ 부분들이 리메이크를 통해 제대로 발현되지도 않고 반대로 숨겨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단순히 병식의 캐릭터만으로 <하녀>에 대한 호평을 늘어놓는 것은 불필요한 수사에 불과하다. 임상수의 <하녀>가 적극 차용하고자 마음먹었던 원작 <하녀>의 세트장과 섬뜩한 계단, 그리고 은이의 욕망은 어디로 간 것일지. <하녀>는 서울을 조망하는 최동훈의 <전우치>로 시작되어 돌연 변모해버리는 박찬욱의 <박쥐>로 끝을 맺는다. 이도저도 아닌 장르 영화는 도저히 참아낼 재간이 없다.

 

2010.05.14
강민영(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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