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회 골든 글로브에서 <500일의 썸머> <나인> <사랑은 너무 복잡해> <줄리 & 줄리아>를 제치고 뮤지컬ㆍ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더 행오버>가 쥐도 새도 모르게 DVD로 출시돼있었단 걸 얼마 전에 알았다. 안 그래도 지난 여름 북미 박스오피스를 떠들썩하게 한 영화라 심히 궁금했던 터였다.

미국에선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더 행오버>가 쓸쓸히 DVD로 직행한 이유는 알만하다. 한국 관객을 움직일만한 스타가 없는데다, 닥터(doctor)가 될 수 없는 덴티스트(dentist)의 비애랄지 마이크 타이슨의 출연 같이 미국 사람이나 박장대소할만한 웃음코드를 지녔기 때문이다. <더 행오버>는 <로드 트립> <올드 스쿨>을 연출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신작이다. 철없는 마초들의 질펀한 난장을 그린 성인 코미디는 한국에서 그다지 호감을 얻지 못한다. 그나마 토드 필립스의 전작들은 대부분 개봉이라도 했지, 쥬드 아패토우에 대한 푸대접은 말이 아니다. <텔라데가 나이트> <사고 친 후에> <슈퍼배드> 등 아패토우 사단의 주옥같은 영화가 극장 구경도 못해보고 DVD용으로 전락한 건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그나마 DVD라도 나와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더 행오버>는 덜 자란 남자들의 좌충우돌을 담은 R등급 코미디의 계보를 충실히 잇고 있다. 게다가 이런 영화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는 총각파티가 주된 이야기다. 결혼 며칠 전, 그놈의 총각파티를 위해 4명의 친구가 부푼 가슴을 안고 라스베가스로 달려간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예비신랑이 사라지고 없다. 문제는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간밤의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듯 아수라장이 된 호텔방엔 웬 갓난아기가 놓여 있고, 거대한 호랑이가 화장실에서 어슬렁거리는가 하면, 한 친구는 앞니가 뽑힌 채 피를 흘리고 있다. 과연 지난밤 이들에게 무슨 생긴 걸까? 세 친구는 까맣게 지워진 간밤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거리를 나선다.
술 좀 먹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당해해봤을 ‘필름 끊김’ 현상. 자신의 주사를 남의 입으로 전해 들어야 하는 답답한 상황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쓰라린 경험이다. <더 행오버>는 주인공들의 얼빠진 심정에 관객을 동화시키며 서서히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통해 추리물의 쾌감을 선사한다. 사라진 기억과 친구를 찾아 나선 남자들의 여정은 웬만한 범인 찾기보다 더 스릴 있다. 속속 출몰하는 의문의 인물들과 주머니 속 단서를 하나 둘 좇다보면 스트립댄서와의 즉석 결혼식에서부터 마이크 타이슨의 저택에 침입하기까지 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뿐만 아니라 라스베가스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펼쳐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대책 없는 친구들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주사를 피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디어의 승리다. 숙취와 주사라는 하찮은 소재와 막장을 달리는 소동으로 영리하고 재치 넘치는 추리극을 뽑아낸 토드 필립스의 감각이 돋보인다.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눈길을 잡아끄는 솜씨하며, 정신줄 놓은 인물들의 한심한 짓거리로 한참 혀를 내두르게 하다가 이내 사나이들의 성장과 우정으로 따스하게 마무리 짓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더 행오버>는 미국식 성인 코미디의 진화를 증명해 보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