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앞에 나서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뜻의 이 관용구는, ‘사공이 많으면’ 이란 전제를 조건으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배가 산으로 간다는 건, 때론 신의 섭리요 때로는 불굴의 의지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컨대 옛날 옛적 노아의 방주가 40일 간의 대홍수 끝에 다다른 곳은 아라랏 산이었다. 또한 우리는 배를 끌고 산을 넘어 기어이 카루소의 절창을 아마존 강물위에 울려댔던 헤어조크의 영화 <피츠카랄도>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전설 같은 성서 속 이야기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도ㅡ물론 <피츠카랄도>에서 산을 넘는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배우들의 연기로 만들어졌다ㅡ배가 산으로 올라간 예는 역사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니까 때는 1453년, 동로마제국 정복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콘스탄티노플까지 진격한 술탄 메메드는 제노바 영토까지 배를 운반하게 된다. 방법은 둥근 목재로 썰매를 제작해 기름칠을 한 후 그 위에 배를 얹어 끄는 방식이었는데, 놀랍게도 4월 22일 하룻밤 만에 70척의 배가 이쪽 바다에서 산과 골짜기를 지나 저쪽 바다로 옮겨진 것이다. 이로써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었고 오스만트루크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동방의 십자가가 쓰러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배가 어떤 산으로 어떤 사공들에 의해 옮겨지느냐에 따라 다를 테니까 말이다.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자 공모가 발표되었다. 설 연휴의 업무·심리적 공백을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타이밍이 절묘했다. 공모요강부터 아연실색할 내용으로 가득했으나, 이러한 소식은 (프레시안을 제외하고는) 어떤 언론매체에도 실리지 않았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힘 되어 주길 기대했던 언론이 침묵한 것이다. 그래도 관객들은 동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결의를 다졌다. 지치기는커녕 긴 싸움에도 기꺼이 감수하고 앞장설 자세다. 그러니 어찌 우리들의 시네마테크를 응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지키기 위한 관객모금운동이 한창인 요즘, 나는 좀 더 많은 사공이 배를 끌어줘도 좋다는 생각이다. 영화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과 언론매체의 영향력은 관객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관객의 자발적 모금운동이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면 이제부터는 힘과 시스템을 가진 단체의 적극적 후원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덧붙여 바라기는 문화예술계의 지성들이 이 문제를 공론화해주었으면 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회의하는 물음에, 앞장서서 대답을 내려줘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술탄 메메드와 피츠카랄도는 배를 산으로 운반했다. 전쟁에서 전쟁의 법칙을 비웃으며 상황을 역전시킨 힘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가능케 한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려는 불굴의 의지이다.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결국은 배가 산을 넘어가는 기적과 만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비록 영화일지언정 정글 속 오페라하우스에서 카루소의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만들겠다는 피츠카랄도 한 사람의 염원도 이뤄졌거늘, 하물며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관객의 한결같은 바람임에랴. 문제는 변치 않는 믿음이고 행동이다.
낭만주의
저 변산반도의 사타구니 곰소항에 가면
바다로부터 등 돌린 폐선들,
나는 그 낡은 배들이 뭍으로 기어오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뭣이? 바다가 지겹다고?
나는 시집을 내고 받은 인세를 모아서
바다에 발 묶인 배 한 척을 샀던 것이다
세상에, 아직도 시를 읽는 사람이 있나, 하고
너는 마치 고장난 엔진처럼 툴툴거리겠지
하지만 말이야, 배를 천천히 뭍으로 올려놓는 순간,
그 어둡던 바다도 배도 단번에 환해졌단다
그때 덩달아 끼룩끼룩 울어준 것은 갈매기들이었고
너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바다만 바라보겠지
나는 배를 데리고 갈 방도를 생각하느라
이십 년 동안이나 끙끙대며 시를 쓴 것 같다
배를 분해해서 옮기는 일은 재미가 없을 테고
트럭 짐칸에다 배를 통째로 태우는 건 더 우스꽝스런 짓이지
그래서 밀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귓불이 연하고 빨간 아이들이 조기떼처럼 재잘대며 배를 따라왔던 거야
생각해봐, 여러 개의 손들이 한꺼번에 배를 민다고 생각해봐
배도 힘이 났던 거야
국도를 타고 가다가
지치면 미끄러운 보리밭으로도 가고....
배를 밀고 가는 나를 보았다면, 너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핑계를 대거나, 미친 짓이라며 손가락질했겠지
나는 배를 잠시 멈추고 네 귓구멍이 뻥 뚫리도록 뱃고동을 올려주었을 거야
詩를 읽는 시간에 자신을 투자할 줄 모르는 인간하고는
놀지 않겠다, 절교다, 하고 말이야
나는 장차 배를 밀어 산꼭대기에 올려놓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배를 산꼭대기로 밀고 올라가느냐고 ?
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시인이거든
내가 항해사였다면 배를 데리고 수평선을 꼴깍, 넘어갔을거야
안도현 詩集, <아무것도 아닌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