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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월례비행] 불편을 넘어선 고통의 연대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2000년 10월 17일,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민간인 조사관과 국가에서 파견된 조사관들이 모여 과거 공권력에 의해 의문사로 덮혀졌던 사건들을 재수사하기 위해 출범했다. 민간 조사관들은 자신의 동료들을 공권력에 의해 보내야만 했던 과거의 죄의식에 의해 이 일을 시작한다. '사심을 버려라', '의문사는 타살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등의 조사관 원칙을 갖고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사를 당한 일가족을 만날 수록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한계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김대중 정권 하의 한시적 기구로써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그 한계를 느끼는 것이 이 기구의 설립 목표였는지도 모른다는 자조적인 웃음이 스크린 가득 역사의 상흔을 느끼게 할 뿐이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들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어 한다. 화학분자들처럼 서로 안정하기 위해 다른 분자들과 결합하는 것처럼 우리는 '편'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역사를 지속해왔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 안에서 그 진실은 언제나 불편한 것들이다. 민주화를 이룩한답시고 시작부터 부정선거였고, '민주'라는 이름을 부르짖을 때마다 우리는 피로 얼룩진 숱한 시신들과 만나야 했다. '승자의 역사'는 우리를 진실로 인도해주지 않는다.

그 불편함이 현대에 와서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여 진다. 그 일각조차도 보려고 해야 보이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만든 훌륭한 수단들에 눈을 현혹당하기 쉽다. 걸 그룹과 짐승돌은 알아도 용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대통령이 왜 자살을 선택해야했는지는 모르는 것이 지금의 진실이다. 이러한 역사를 계속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한국어보다는 영어에 친숙해져야 하고, 국사는 선택과목이 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네오는 두 약 중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빨간약을 선택하지만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단체로 파란 약을 선택한 것 같다. 이 세계가 숱한 진실들을 숨기고 있는 매트릭스와 같은 허구의 세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안녕과 부를 위해 진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면서 감추고 살아가는 것이다. 진실을 언제나 감춰져야만 하는 것이고, 타인의 고통은 문자 그대로 '타인의 고통'으로 존재할 뿐이다. 우리 사회가 점차 분열증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 자신의 죄의식으로 시작했든 아니든 최소한 그들은 빨간약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역사 안에서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임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네 현실은 타인에게 시선을 돌릴 공감의 시간 또한 주지 않는다. 역사 속으로 파묻혀 버린 진실들 앞에 우리는 고통을 연대해야한다. '부끄러운 대한민국'임을 알더라도 '정체성이 없는 게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를 반추해야 한다.



변성찬: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변성찬입니다. 반갑습다. 아시겠지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만드신 경순감독님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계신 안경호님 함께 하셨습니다.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영상 속에서 뵈었는데 감사하게도 참석해주셨어요. 요즘 우울한 소식들이 계속 들어오네요. 저희들도 관련 있는 문제고 전용관도 넘어가고 미디액트도 넘어가고 영화를보면서 계속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현장에 계셨던 분들이 어떠셨을까 생각하면 참 그런데, 일단 두 분 말씀 좀 들을까요. 영화를 보면 영화 자체 보다 영화가 미쳐 담지 못한 부분에 궁금증이 생기는 영화입니다. 우울증 같은 걸 느끼실 듯 합니다. 자리에서 풀 수 있는 걸 풀고 갔으면 좋겠어요. 경순 감독님은 연작은 아니지만 <민들레>를 통해 유가족 투쟁에 참여하셨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까지 동기나 계기가 있어서 힘든 현장으로 가신건지요.

경순: <민들레>가 제 첫 영화였는데 첫 영화를 만들 때는 카메라를 배우면서 영화에 입문하는 중이었다. 사실은 어떤 영화를 찍을까 하다가 인권영화를 찍어야지 하며 시작했는데 부모님들, 특히 어머니들이 유가협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고 그래서 <민들레>를 찍게 된 거다. 부모님들 특히 어머님들을 통해 내가 나의 죽은 동지들을 잊고 있었구나, 연일 신문을 오르내리던 의문사 분신 사건들을 나 역시도 내 생활에서 잊었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있었고 그 자리를 기억하게 해주신 분들의 투쟁을 찍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민들레>를 마치면서의 생각은 그랬다. 영화 속에도 언급하지만 우리가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게 내 부모 위해서, 가족 위해서가 아니었지 않나. 나와 너 우리, 동료, 그런 문제를 가지고 싸웠던 사람들이면 당연히 사회가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하는데 그 자리의 주인공인 부모님들과 유가족들이 그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생각도 들었다. 한동안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과 노동현장에서 근무했던 사람들 등 많은 분들이 의문사발족위원회에 계셨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되었고 민간조사관들은 동지와 같은 심정으로 움직였다. 나는 영화찍는 사람으로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아온 동지로 당연히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성찬: 나중에 제가 잊을까봐 질문 먼저 드린다. 영화를 보면서 궁금한 것 하나 있다. 정부기관에서 파견한 조사관들의 경우 카메라가 있는 것과 없는것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순: 그 이야기는 내 입장과 민간조사관의 입장이 다를 것 같다. 사실 안기부 조사관이 부담스러웠다. 늘상 공식적인 걸 찍는게 아니라 거의 매일 붙어찍으니 이 분들도 불편했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잖나, 카메라가. 나중에는 내부 분들도 그냥 나를 내부직원으로 착각하는 것 같더라.

변성찬: 그런 변화가 보이더라고요. 사실 오늘 감독님보다 안경호 조사관님을 괴롭혀야 될 텐데(웃음).

경순: 안경호 조사관님이 말씀하시긴 할 텐데 아직도 조사활동을 하고 계신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가 끝나고 연장이 되어 2기까지 한 다음에 체계가 바뀌었다. 그 이후의 상황을 좀 말씀을 해달라.

안경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 2기가 끝나고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의문사 한 부분, 즉 인권적 측면과 권위주의적 통치 하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전쟁을 해야하지 않느냐, 포괄적 과거청산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2004년에 지속되었다. 시민사회 정치권 범국민위원회, 국회에서는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2005년 5월 3일에 제정했다. 이후에 다시 의문사진실위원회가 생긴 거다. 나같은 경우는 조사 3국에 있었는데 의문사위원 사건 80건 중에 불능기각된 사건들 40건 정도를 재신청했고, 의문사사건 조사하고 간첩조작 등, 각종 인권침해 사건들을 주로 맡아서 조사했다.

 



변성찬: 여러 가지 참 답답하고 가슴이 막히는 것 같았지만 마지막 기한을 앞둔 사태로 전개가 맺음되어서 궁금하다. 불능판정의 경우는 시한만료와 관련해서 엄청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데, 이월된 것 중에 진전 등이 있다거나 한 사건은 있나?

안경호: 내일부터 지방출장이라 좀 늦었는데 마침 극장에 들어오니까 9시 45분경이 되었다. 영화는 강릉 김성수 어머니 장면부터 봤다. 그 사건은 86년 6월 11일날 출가해서 발견된 사건이고 2기 때 공권력 사망으로 인정이 된 사건이다. 3번 개정했던 신호수 사건은 86년 6월 19일날 목을 맨 상태로 발생한 것이다. 당시 서부경찰서에서 간첩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결정이 났다. 영화 속에서 신청인이 서류 던지고 찢고 하던 장면 기억나시는지. 이건 문영수사건인데 82년에 광주서부경찰서에서 연행되었다가 사망 이후 의학실습용으로 쓴 것이 밝혀졌고 조사를 통해 진실규명 결정난 것이다. 대체적으로 40건 중 4년 가까이 조사를 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건들이 의문사 사건이기 때문이다.

변성찬: 사실은 영화끝나는 과정에도 있지만 시한이 만료되어서 불능이라는게 답답했다. 더욱 답답했던 건 이게 연장이 된다 해도 밝혀질까라는 갑갑함이 컸다. 크게 부각된 사건들에게 시간이 주어지자 차근차근 해결이 되는게 거꾸로 놀랍기도 했다.

안경호: 입법과정 4년이고 기본 2년이 연장가능하다. 2010년 4월 24일까지가 만료기간이 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이걸 2개월 연장해서 6월말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그 기간 내에 만료되는 사건들 처리하고 종합보고서를 연말까지 내고 하는 게 3월까지의 업무다. 조사활동은 2~3월까지 마무리 되고 결과보고서를 통해서 준비과정 1~2개월이 걸린다. 6월말이면 대부분의 사건들이 결정완료된다.

변성찬: 2년 연장한 것까지 포함해서 더이상 연장 가능성은 없는 건가?

안경호: 최근 청와대와 국회 쪽에서 2개월 연장인가를 냈다. 원래 2년인데 말이다.



변성찬: 여러 가지 하는구나, 하하. 두 분 중에 어떤 분이 잘 말씀하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 보면 오히려 민간조사관하고 파견조사관 사이의 갈등이나 이런게 있을 때 답답하고 그것은 분노에 가까운 것들이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초점이 변화되더라. 파견조사관 분들은 카메라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오히려 민간조사과 내부 또는 유가족 분들간에 구조적인 한계가 내부에 고통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답답했다. 그러니 그걸 지켜보신 감독님과 그 안에 계셨던 분들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걸 우리에게 주목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안경호: 나는 의문사위원회에 들어가게 된 동기가 중고등학교 친구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건강한 노동자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같이 했었는데 92년도에 실종되었다. 그 이후에는 생사확인이 불가능하다. 이후 나와 그의 가족 동료 친인척 모두 그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현장에서 해고된 이후 민노총에 있다가 복직투쟁도 하고 하다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되면서 내 친구의 사건을 진정하기 위해 들어갔는데, 여러가지 내부문제가 좀 있었다. 나는 민노총 파견으로 위원회활동을 했고, 초기에 파견된 정부파견 조사관들과의 대립은 누가 먼저 선정할 것인가 등 조사주도권문제가 강했다. 당시 경찰 검찰 안기부 보안사를 주로 조사대상으로 하다 보니 파견된 사람들은 친정에 대한 조사까지 해야하는 입장이었다. 가능하면 적고 낮게 수위를 내리기도 했다. 나 같은 입장의 조사관들은 대다수가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조사했다. 같이 근무했던 파트너가 국방부 헌병이었는데 나 때문에 3개월 만에 복귀를 했다. 그정도로 갈등이 표면화되어 있었고 내면적으로도 힘들었다. 위원회 종료 순간까지도 의견을 달리 달아서 불능 기각으로 처리하려 하는, 단순 의문사라기보다 자살 사고로 처리하려는 등 관점도 달랐다. 힘들었던 건 겉으로는 파견조사관들과의 갈등 문제였지만 근본은 조사관증을 가지고는 있으되 우리가 조사역량이 되는가, 학교도 아니고 배우면서 일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는 데, 늘상 역량키우기 노력을 검토하고 토론하다 보니 상당한 중압감이 몰려왔다. 영화에서도 아버님 어머님 문제들이 나오는데 그분들을 보며 스스로 얽매이는 부분이 있었다. 시민 사회단체나 유가족생각 등 출근할 때마다 항상 상가집에 들어가는 심정이 너무 강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무지개를 처음 본 소년의 눈빛처럼 내가 조금만 더하면 실체에 접근할 수 있겠다, 조금만 더하면 부모님들께 위로드릴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여러 역량이나 현실적 제약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변성찬: 마지막 크레딧 소개 때 중간에 사퇴하셨다가 다시 복귀하신 것으로 나오던데.

안경호: 위원회 문제 때문에 다시 안 들어가겠다고 하고 나오긴 했는데, 1기 끝나고 1기 참여했던 민간조사관들이 대단한 결의를 했었다. 결사까지는 아니어도 1기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할 수 있는게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 끝나고 나서 시민사회제안서도 보냈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역량을 투입할 수 있는 교육토론도 했고, 평가불능 기각사건에 대해 상당부분 오랫동안 토의했었다. 적어도 1기의 경험을 가지고 2기는 온전히 진실규명을 해야한다는 당면과제가 있었다. 준비된 대원들이 위원회에 진입해서 마지막 남은 과제를 하겠다는 결의를 했다. 물론 이것도 발족에 앞서 민간조사관들이 서로 상처입고 스스로 분개하는 과정을 겪었다.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마음이 깨진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돌아가는 건 별로 의미가 없었다. 이후에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형이 골리앗에서 목을 매는 사건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일이 참 많았다. 선배들 동지들이 네가 마지막에 들어가서 힘들지만 작업을 해야하지 않느냐고 말을 해주었다. 나 역시 1기 준비과정을 통해서 진상을 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한 공황이 오래 갔다. 1기가 끝나고 도망치다시피 했으니까. 1기 활동을 통해 내 모든 역량을 바쳐서 하되 내 역량이 할 수 없는 부분은 다른 사람을 통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중고등학교 때 시험 보기 전에 체력장을 하잖나. 마지막 한 바퀴 최선을 다해 도는 것, 나도 마찬가지로 마지막 바퀴 돌 듯 돌고 더 이상은 내 역량으로는 돌 수 없겠다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접으려고 했는데. 주변 분들이 새롭게 만드려고 했던 것도 실패하고. 돌아보면 과연 우리는 세력이고 진영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변성찬: 대단한 결의와 노력들이 있어서 나로서는 저건 도저히 해결 안 되겠지 한 부분이 이후로 다 해결되어서 이 자리에서 들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 같다. 혹시 관객분들 궁금하신 것 있으시면 준비될 때까지 몇 가지 질문 더 드리겠다. 굉장히 힘든 이야기고 힘든 영화였지만 한편으로 경순 감독님의 서비스라 생각됐던 부분이 있었다. 중간에 웃을 타임을 주셨잖나. 문 반장님하고 이야기하는 등등.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쇼킹패밀리>도 찍어 놓으면 코메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게 편집이 되었던 것 같다.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경순: 영화를 찍다보니 이게 단지 민간조사관 입장에서 공무원 비판하고 이런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시작했을 때 이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정답을 가진 건아니었다. 딱 시작했는데 정말 우리 사회 초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이틀이 뜰 때 위원회에서 많은 사람을 보았다는 말로 시작했는데, 영화를 찍으며 사건조사 결과 등 이런 것 보다 사람들을 통해 보이는 문제가 더 많았다. 사실은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온 거다. 짧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게된 게 아쉽다. 이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나의 고민이 되는 것들이 많아서 많이 쏟아져 나온게 아닌가 싶다. 그 부분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고 현실이다. 우리 사회가 웃긴 게 반은 수면 아래 잠적해 있고 제도나 질서나 윤리라는 이름으로 그 중 일부가 수면 밖으로 나와 있다. 말도 안 되는 국회의원 싸움질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교육 받은 것과 전혀 상관 없는, 상식이 다 상식이 아니고, 위원회라는 곳이 정말 국가기관부터 저 아래 노동자와 그 밑까지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우리가 가진 가치나 윤리라는 게 뭔지, 하물며 우리가 386이란 얘기도 나오지만 시민단체이든 아니든 운동이든 아니든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뭐고 그걸 우리는 알고 있는 걸까, 사람들을 통해 그걸 확인하는 걸까 서글펐다. 그래서 민간조사관 내부갈등이나 이런 것들이 있었던 것 같고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현실의 모습이 아닌가.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2004년도에 만들었는데 편집과 수정 과정에서 굉장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영화 만들 때는 그 속에 빠져서 지냈는데 사실 보면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관객분들도 그렇게 느끼고 계실 듯하다. 영화를 보고 우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어떻게 봐야할지...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문제가 진짜 많은 것 같다. 이것도 내가 영화를 만들었기에 가까이서 고민했기에 느낀 문제들이어서, 영화작업 끝나고 나서 2기 조사하고 다시 군의문사 등등 그 근처도 가고 싶지 않더라. <쇼킹패밀리>를 찍긴 했지만 그 공백기간 동안에 다시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는거다. 일반 국민들이 봤을 때 이곳의 존재 자체를 알기나 할까. 특정 유가족들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도 계속되는 문제다. 우리의 문제라면 도대체 국가적 자존심 국민의 자존심으로 우리가 이야기해야 될 게 뭔지 알아야 한다. 왜 어려운 영화를 만든 사람이 된 건지, 나에게는 답답한 지점인 것 같다. 근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모르겠고 이 대한민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데, 이걸 모두 알아야만하는가...벅찬 일인 것 같다. 생각하면 머리가 아픈 지점이 있다. 사건 자체를 가지고 부모님과 국가 등 여러 관계 속에 위치하는 안경호씨는 더 심하지만 나는 이제 밖의 사람이 된거다. 떨어져서 다시 그때를 돌아보는 입장을 생각하면 정신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 안경호님도 심적 갈등이 많아서 치료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웃음). 참 어려운 것 같다.



변성찬: 안경호님께서 아까 오래 달리다가 마지막 코스를 달린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많이 힘드실 것 같다. 근데 두 분은 각각 따로 웃기시다가 나중에 듀엣으로 웃기셔서 재밌었다. 그래서 콤비가 잘 맞아서 좋았다.

경순: 두분 다 1과였기에 눈에 안 띄게 하려고 해도 자꾸 눈에 띄더라. 영화에서는 111분이 긴 시간인데 위원회 전체를 담아낸 테입이 400개가 넘는다. 영화는 극히 일부인 거다. 재미로 치면 더 많지만 그게 재미로 보여줄 수 있는건 아니기 때문에. 심 조사관을 괴롭힌 것도 미안하고 그분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기간이 끝난 후 한동안 후유증이 심하셨다. 그분이 왜 그런 후유증이 심한지, 그건 그분이 가진 죄책감 뿐아니라 사랑 애정과 이런 사건들에 대해 참아낼 수 없는 과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열정이 아니었으면 이만큼도 못 왔을 것이다. 그렇게 오신 분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40세 다 되어서 2, 3년을 봉사했는데, 사실 성과를가지고 돌아간게 아니라 투자할 만큼 투자하고. 솔직히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결국 사회가 남겨주는게 아직까진 예쁜 모습은 아닌 것 같아서 아쉽다.



변성찬: 벌써 끝맺을 시간이 다 되었다. 어떤 말을 하기 보단 담아갈 것을 더 많이 주는 영화인 것 같다. 마지막에 결정 소식을 들은 두 부모님도 기억에 남았다.

안경호: 아픈 이야기긴 한데 지난 12월 17일날 부모님들이 농성을 하러 사무실에 오셨다. 농성 이후에 10여 건의 사건에 대해 위원회 조사결과도 못 믿고 신뢰 자체를 할 수 없다 취하서를 낸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드리겠다. 제일 마지막 영화에 보면 정경식사건의 어머님이 내 아들아 하면서 울부짖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 사건을 의문사진상규명위원 1기 2기때도 그렇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조사할 때 늘 어머님이 독약을 가지고 다니셨다. 진실규명이 안 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시겠다는 의미였었다. 우리로서는 이걸 목숨을 걸고 해야 하니까 심각하게 생각 했는데, 어느 날 어머님이 "안조사관, 내가 결심을 했어, 내가 약을 버렸네"하시는 거다. "왜요?" 여쭤보니 "듣자하니 사람들이 죽은 후에 자살한 사람 가는 데가 따로 있고 자연적으로 죽은 사람 가는 데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 우리 자식이 자살하지 않았다고 신념처럼 생각했는데 내가 여기서 죽으면 자식 얼굴을 어떻게 보겠나, 내 자식은 자살하지 않았잖아요" 하시더라. 마산출장을 다녀오며 그 분을 뵈었다. 손을 잡으시고 너라도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하시는데, 마음이 아프더라.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어머님들 생각해서 일을 진행해야겠다.



리뷰:박정애
녹취:강민영
사진출처: 인디포럼 공식블로그

 

2010.02.09
강민영(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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