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plus

인상주의 화가들의 무덤, 오르세 미술관과 프랑스 미술의 현주소

 

[여름의 조각들, L'Heure D'ete]


<여름의 조각들>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영화다. 평소 촬영허가조건에 대해 까다롭기로 유명한 오르세 미술관은 이례적으로 철통처럼 지켜온 소장품을 대여하고 내부를 카메라에 노출시키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쏟았다. <데몬 러버> <클린> <보딩 게이트> 등 다국적 작업을 즐겨온 비평가 출신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이 작품을 통해 지극히 프랑스적인 주제로 눈길을 돌렸다.

에드가 드가의 조각상, 카미유 코로의 회화, 펠릭스 브라크몽의 꽃병, 루이 마조렐의 책상 등 예술을 향한 남다른 애정으로 19세기 인상주의와 아르누보 작가들의 작품과 평생을 함께한 어머니. 어느 여름 가족들과 함께 생일을 기념하던 중 큰아들에게 자신이 죽고 난 뒤 유품에 대한 상속 및 처분 문제를 상의하지만, 아들 프레데릭(샤를르 베르랭)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뒤 어머니가 급작스럽게 사망하고, 세 남매는 추억이 담겨 있는 집과 유품에 문제로 갈등하게 된다. 어머니의 유산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어 하는 큰아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라 기대하지만,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둘째 딸 아드리엔(줄리엣 비노쉬)은 집과 큰 의미를 두지 않을뿐더러 본인의 취향이 아니라고 말한다. 심지어 막내 제레미(제레미 레니에)는 중국에서 시작될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어머니의 유품을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은 19세기 파리를 중심으로 인상주의가 만발했지만 20세기 모더니즘의 근거지를 뉴욕에게 넘겨주고, 21세기 들어 중국을 비롯한 신흥 예술국들의 급격한 성장으로 위협을 받고 있는 프랑스의 미술사적 정황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결국 유품의 대부분은 오르세 미술관으로 매입되고, 나머지는 경매를 통해 팔려나가는 등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놓인다(감독은 영화 속에서 오르세 미술관 담당자의 냉소적인 대사-“크리스티 뉴욕은 분명히 스케치북을 낱장으로 쪼개서 판매하려고 할 것”-를 통해 상업주의로 흐르는 미국 미술계에 대한 불편한 심기와 전통붕괴에 대한 위기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오르세 미술관은 어떤 곳인가. 오래된 철도역을 개조해서 만든 이 미술관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정신을 기리는 성전이다. 대부분의 소장품이 19세기 인상주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 폴 세잔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등 인상주의 거장의 주요 작품 4,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한 찬가로 이어진다. 투명한 햇살 아래 가족들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휴일 점심식사 정경은 빛과 색채의 마법에 빠져 이를 포착해내기 위해 연구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캔버스 그 자체이다. 특히 프랑스 전쟁(1870년~1871년) 이후 자연과 가정으로 회귀하려는 열망으로 정원에서의 평화로운 정경을 추구한 클로드 모네의 <오찬>, 파리 근교에서의 편안하고 즐거운 모임을 포착한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보트 경주자들의 점심> 등 한가로이 노니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표현한 인상주의 회화와 필연적으로 교차한다. 한편 장식장과 꽃병, 찻잔 등 영화 속 주요 유품으로 등장하는 아르누보 공예품은 인상주의와 같은 시기인 19세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예술사조로서, 식물의 형태를 연상시키는 유연하고 유동적인 선, 복잡한 패턴과 우아한 문양으로 공예와 건축, 생활상에까지 영향을 미친 전근대적 문화 양식이다. 이 공예품들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영화 속으로 건너와 스크린을 장식했다.

어머니의 분신과 같은 책상이 미술관에 덩그러니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프레데릭은 쓸쓸하게 되뇐다. “갇힌 것 같아.” 그러자 부인이 대답한다. “아니, 이제 모두를 위한 역사가 된 거야.” 행복했던 여름의 조각들은 언젠가는 기억 뒤편으로 떠나간다. 미술 역시 시대의 흐름을 타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추억과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증폭되며 영원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신화는 다시금 새로운 전통을 창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의 조각들>은 19세기에 화려하게 꽃피웠지만 지금은 오르세 미술관에 고이 잠들어 있는 인상주의 작가들을 향한 감독의 헌사이자, 전통의 수호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 사이에서 고민하는 조국을 향한 감독의 자성적 고찰이다.

 

2010.01.23
조숙현(editor)
퍼블릭아트 기자
의견쓰기
※로그인한 회원만 의견을 달수 있습니다.
의견(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