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
태초에 여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판도라였다. 판도라는 호기심이 많았으니, 제우스가 열어보지 말라는 상자를 열어 희망만을 남기고 세계에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그 태초의 시대가 '황금시대'였다. 이 시대는 죄악이 없는 행복한 시대로, 법률이 강제하지 않아도 진리와 정의가 행해졌고, 위협하거나 벌을 주는 관리도 없었다. 주변에 성곽을 쌓는 일도, 칼이나 창도 없었고, 인간은 노동하지 않아도 대지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고, 상춘의 계절이 계속되었더랬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황금시대'는 그와는 다르니, 잘 살아보려 마음먹고 가게를 냈는데 중국산 식품을 사기치고 납품해 식품위생법에 걸려 망하고, 자살을 하려 약을 샀는데, 그 마저도 사기를 당해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유언). 또 주식으로 돈을 날린 남편이 자신의 명의로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하고(불안), 52주 연속으로 로또에 당첨돼 매스컴의 관심을 한 몸에 받다가 그 동안 받은 당첨금 모두를 로또에 걸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당첨되지 않아 추락하기도 한다(신자유청년). 물질이,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동력인 지금 그때의 황금과 지금의 황금은 의미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결국 돈이 있다면 그 시절의 황금시대를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이 되니 이것이 현 황금시대이다.
열편의 옴니버스 중 눈에 띄었던 작품은 <페니러버>였다. 조원선의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와 세련된 영상이 뮤직비디오를 연상시켰는데, 다른 작품들이 이 시대의 돈의 전복된 기능과 그 현실을 꼬집고 비판하고 있다면 <페니러버>는 십 원짜리 동전에 얽힌 감상적인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길에 떨어져있어도 줍지 않는 십 원짜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동전이 십 원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치가 소진 됐을 때, 십 원짜리 동전은 보통의 십 원짜리 동전이 되고 말지만 말이다.
사실 돈이라는 것이 그 가치를 모를 때는 허상이다. 어린 아이에게 동전을 주면 바로 입으로 들어갈 것이고, 개에게 던져준들 닭 보듯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들에게 그 돈이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이니, 사람이 필요에 의해 만든 화폐인데 이제는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해졌다. 이것이야말로 가치전도의 극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돈이 무섭다고 말한다. 나는 생각해본다. 돈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고. 돈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 또한 사람이 만든 것 아니겠는가.

김일권: 오신 감독님들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열 분 다 오시진 못했구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남다정 감독님, 양해훈 감독님, 김영남 감독님, 이송희일 감독님, 윤성호 감독님 다섯 분 오셨습니다.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김일권이라고 하구요, 돌아가면서 인사 말씀 먼저 드리겠습니다.
윤성호: <신자유청년>을 연출한 윤성호입니다.
이송희일: <불안>을 연출한 이송희일입니다.
양해훈: <시트콤>을 만든 양해훈입니다.
김영남: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을 만든 김영남입니다.
남다정: <담뱃값>을 만든 남다정이라고 합니다.
김일권: 진행도 부산스럽고 그래서 죄송하구요, 2009년도 마지막 월례비행입니다. 그전과는 다르게 인디포럼에 참가하고 계시는 감독님들이 나온 분만 다섯 명인데,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회 겸 상영회 겸 자리를 마련했어요. 오늘 컨셉트는 진지한 것 보다 빨리 진행하고 송년회 자리를 옮겨서 자연스럽게 진행하자는 것이어서요. 끝나자마자 뒤풀이 자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꼭 질문 있으신 분들은 질문 부탁드립니다. 일단 각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윤성호: 크게 말씀드릴 건 없고 <신자유청년> 만드는데 제일 큰 도움주신 분이 노 개런티로 출연해주신 임원희 선배님이신데,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뵈었어요. 전주 때도 못 오시고 개봉 때도 못 오시고. 근데 오늘 처음으로 오셨어요, 감사드립니다.
이송희일: 정말 송년회를 하자는 의미로 모이다 보니, 다섯 명이 인디포럼 식구들이에요. 다섯 명이 다 참가하고 있어서 부끄럽긴 하지만 재밌게 송년을 하자는 취지였어요. 질문 있으시면 질문 주시고요.
김영남: 영사사고가 나서 죄송하지만 잘 진행이 되었으면 하고요. 보는데 지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연말에 어려운데 돈에 대한 영화를 보셔서 어떠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돈에 관련된 영화를 열명의 감독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서 재밌던 작업이었기도 하고, 여러 감독들이 생각하는 이야기나 메시지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양해훈: 종합 선물세트처럼 모여서 관객들에게 선물이 되고 모여서 이야기하면 왁자지껄되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되었습니다. 송년모임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했으면 좋겠어요.
남다정: 앞에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전 따로 드릴 말씀이 없네요, <담뱃값>에서 노숙자로 출연하셨던 서민성 씨를 모셨습니다.
김일권: 질문 있으신 분들? 영사사고가 나서 좀 민망한데 질문 있으신 분들 있으면 말씀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하시는 동안 간단하게 질문을. 윤성호 감독님은 실제 로또를 해 본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웃음).
윤성호: (웃음) 옆에 계신 분이 김일권 피디님이시고 저랑 많은 영화를 같이 하셨는데 이것만 같이 안 했어요. 로또를 한 번도 구입해본적은 없지만, 만나는 사람들마다 로또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김일권: 이송희일감독님, 영화 보면 빚 이야기가 나오는데 남아있는 빚은 청산하셨는지(웃음).
이송희일: 사실 오늘 진행할 예정이었던 다른 평론가 분이 계셨는데 갑작스레 땜빵으로 김일권 피디가 진행을 맡게 되셨습니다. 다 청산했고요. 얼마 전에 두 번에 걸쳐 심각하게 신용불량에도 올랐고 쫓겨나는 생활을 하다가 150만원정도 남았는데 보다 못한 어머님께서 갚아 주셨어요. 10년 만에 빚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독립영화 하는 분들이 실제로 빚에 쪼들리고 있고요, 각 작품 당 500씩 받고 찍었는데 다른 단편이나 이런 것들은 개인 돈이 들기 때문에 방 빼고, 저 같은 경우는 카드로 돌려막다가 그런 사태가 왔죠.
김일권: 개인적으로도 잘 알고 해서, 진지한 질문 드리기는 민망하고 철판 깔고 하고 있는데.
윤성호: 잠깐 참고 삼아서 말씀드리지만 임원희 선배님도 독립영화 잘 경험하지 않으셨을 텐데, 모든 분위기가 이렇진 않고요 (웃음) 이 피디님이 문제인거지, 진행 잘만 하면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처음 상영 오신 분들은 오해하지 마세요(웃음).
김일권: 사고가 나서 (웃음) 김영남 감독님, 마지막 영화의 챕터 2인가요, 대사가 안 들렸어요. 사운드가 불안하고 해서. 상영관에서 문제가 있어서 관객분들게 의도 등을 간단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영남: 사고 안 났으면 할 말이 없어서 큰일날 뻔 했네요(하하). 외향 상으로는 돈을 줘야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긴 한데 영화의 마지막장면처럼 두 사람에게 닥치는 상황에서 두 사람 관계의 문제들을, 그러니까 적대감의 관계가 우화된다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비현실적인 감이 있어서. 실제로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적도 있고 . 너무 강하게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해서 적당히 하게 되었습니다.

관객1: <페니 러버>랑 <담뱃값>은 원래 사운드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봤는데 원래 없는 게 아니죠? <담뱃값>은 스리슬쩍 잘 넘어가더라고요. 굉장히 작품적인 영화라고 생각되었어요, 그래서(웃음).
남다정: 대사가 아주 많은 영화는 아닌데요, 내용을 이해하시는데 어려움이 있진 않았는지요. 대사가 없는 버전이었으면 저도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일권 피디님이 제 영화에 참여하셨는데, 다른 엔딩버전이 있었어요. 여기자가 비 맞고 걸어가고 다음날 중학생이 똑같이 모방해서 노숙자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장면이었는데 그 장면 노숙자로 출연하셨었죠. 그 장면은 안타깝게도 삭제되었습니다(웃음).
김일권: 저희가 준비를 부족하게 해서 죄스럽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마지막 액땜이라고 생각하고(웃음).
관객2: 양해훈 감독님 작품을 봤을 때 보면서 상상한건 이 영화가 윤성호 감독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이번 영화가 평소 양해훈 감독님의 스타일과 다르신지 어쩐지 궁금합니다. 변화를 주신건지.
양해훈: 영사사고가 머릿속에 계속 남아서(웃음).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고요, 사람에게 나면서부터 어떤 색이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 과정이 있는 것 같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들도 있고 장점, 내 색깔 찾기, 그런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윤성호 감독이랑 친하게 지내니까 영향 받은 부분들도 있고.
윤성호: 영광입니다. <시트콤>이랑 <신자유청년>은 사운드 들렸나요? 제 영화의 사운드가 안 들렸으면 진짜 끔찍했을 텐데요. 양해훈 감독하곤 2년을 친하게 지냈고 좋은 영향도 미치고 소모적인 영향도 있었죠. 저는 <시트콤>이 저하고 비슷하다 생각하진 않고요, 양해훈 감독의 영향을 오히려 제가 많이 받았어요. 양감독이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장편을 엄두도 못 냈던 때에 그 영화를 보고 장편이라는 게 저예산으로도 만들어지는구나 용기를 받았어요. 첫 장편 만들 때 워낙 연기연출 모르니까 양해훈 감독이 출연하면서 연기연출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김일권: 이송희일 감독님 영화를 보면 사석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맨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그 장면 하나를 보여주기 위해 앞 장면을 끌고 갔던 것 같은데 특별히 기획하거나 생각했던 것들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이송희일: 다른 작업을 하다가 가장 돈을 안들이고 찍을 수 있는 공간이 하나 있고 하루 정도 만에 찍을 수 있는 소재를 구상하다 생각 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볼 때 빚을 진 구질구질한 서민들의 얼굴들을 비추는 것에 짜증이 약간 났고 그래서 얼굴을 찍어보자 생각했어요. 완벽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에게 의존했죠. 다 모여서 우당탕 찍고. 해 지네, 달려, 달려, 이러면서 찍었어요. 영화 찍고 돈이 많이 남아서 생활비에 보탬이(웃음). 오늘 영사사고 났기도 했는데 영사사고 소식듣고 부랴부랴 뛰어가신 분이 인디스페이스 관장님이거든요. 여러 가지 것들을 도맡아서 수고해주신 고마운 분인데 이제 인디스페이스가 없어지거든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윤성호: 희일 감독님 말씀 하셨지만 인디스페이스는 운영을 잘해왔어요. 인디포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제와 독립영화들이 개봉을 했는데 내일이 마지막이고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이 저렇게 운영하니까 뺏기지 이렇게 생각하실까봐(웃음). 오늘 초대한분들도 계시지만 유료관객분도 많으실 텐데 돈 내고서 제대로 영화감상하지 못하셨을까봐 걱정됩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시네코드 선재라고, 예전에 서울아트시네마가 있던 곳, 그곳에서 시작하니까요, 오늘 유료관객으로 보셨는데 적절하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신 분들은 그곳에서 다시 만나시면 될 것 같아요.
김일권: 질문 없으신가요? 성의 없는 태도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고요, 지금도 정말 떨립니다(웃음). 내년 계획이나 이런 것들을 살짝 돌아가면서 말씀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남다정: 작년 이맘때 <황금시대> 기획을 처음 듣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그나마 한편이라도 찍고 한 해를 보낼 수 있어서 좋았네요. 더 긴 영화 준비 잘해서 찍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양해훈: 시나리오는 썼는데 잘 되어서 내년에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고, 실수하면서 미끄러지는 재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넘어지면서 한해의 마무리가 자동으로 되는 것 같네요(웃음).
김영남: 여러분들하고 만날 수 있는 계기는 결국 제가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를 보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올 한해는 전에 작업했던 영화가 있긴 하지만 <황금시대>를 통해 여러분들과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았어요. 내년이나 내후년에 다른 작품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송희일: 개인적으로는 내년 4월에 <탈주>라는 영화를 개봉 준비하고 있고 내년에도 열심히 하려고합니다. 다른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고요. 얼마 전에 독립영화전용관이 계약이 12월에 종료되어서 공모제를 냈는데, 적정 단체 없음으로 인해서 떨어졌어요. 독립영화 쪽은 신년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하고 해야 하는데 두 개의 상징적 공간 자체가 붕 떠버리는 상황이어서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워낙 없었을 때도 지냈던 터라 걱정되는 반면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아름다운 정권이 탄생해서 공적으로도 힘들지만, 다시 허리띠를 졸라서 살아가기를 바라고요. 독립영화들은 관객들의 지지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나중에 인디포럼 상영회 등 각종 행사에서 지지를 해주셔야 공적으로 힘든 시기를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윤성호: 어쩌다보니 인디포럼 변호사 같은 말을 계속 하는데(웃음), 저는 원래 관객이었어요.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아트선재에서 동가식서가숙하면서 상영하면서 바라보고 이러다보니 카메라를 들고 편집을 하게 되고. 사설을 조금 붙이면 감회가 남다른데, 특이해요. 조그만 원룸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2년 만에 기약 없이 빠지니까. 이제야 살림을 차릴 수 있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장편을 만들고 돌아다니다보니까 독립영화 상업영화 구분 없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보통 다들 독립이라는 이름에 갇히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오히려 인디 인디포럼 인디스페이스 이런 거는 영토를 확보하려 만든 언어겠죠. 저는 그냥 시민이예요 민주시민 아니예요 이렇게 말하는 게 올바른 게 아니듯이, 영토를 확장하고 심지를 굳히려고 만든 이음절이거든요. 독립영화는 그런 거고 저도 그런 독립영화의 수혜를 입으면서 단편들도 선보이고 했고요, 인디스페이스는 그런 것들을 가능케 만들어주었던 소중한 공간이죠. 작지만 단편들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만든 서사를 선 뵐 수 있고 다른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고 했는데 이렇게 아쉽게 끝나네요.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식으로 원룸 투룸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나아가야겠죠. 여러분들도 그냥 좋은 영화를 애호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옳은 움직임에 애정을 갖다보면 휘둘리지 않는 문법들을 가지게 되겠죠. 여기 개관하고 첫 상영작이 제가 만든 장편이어서 마음이 안 좋은데, 그런 애정을 가지고 독립영화하는 분들이 어떤 무브먼트를 하는지 지켜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리뷰: 박정애
녹취: 강민영
사진출처: (http://hitchwi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