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주 [불신지옥]

공포영화를 만들 때 관객을 극한의 공포로 질려버리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관객을 겁주는 것이 공포영화의 최우선 과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두렵고 무서운 감정을 체험하고자 하는 기대를 품고 극장을 찾는 것이 자명하다.
가상의 스릴러를 즐기는 관객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신인 감독 이용주가 데뷔작 <불신지옥>을 통해 보여준, 공간을 재조합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이 극장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그리고 바라는 것은 어둠 속에서 2시간 내내 충격적인 비주얼의 괴물이나 유혈이 낭자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지 않는, 그리고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덮칠지 모르는 가상의 존재를 재인식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자각은 자연스럽게 존재하지 않는,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이것은 인간 심리의 밑바닥에 위치한 무의식적 공포의 근원을 건드린다.
때로 우리는 스릴러 장르에 능통한 감독들이 공포의 존재를 스크린의 안이 아닌 프레임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게 함으로써 현실과 영화간의 경계마저 위협하는 것을 목격한다. 예를 들어 프리츠 랑의 영화 <엠, M>에서 정신이상 유아 살해범은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그림자나 으스스한 휘파람 소리로 감지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영화사 속 괴물과 범인의 비주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괴하고 충격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존재 자체에 대한 신비로움이 깨지는 순간, 관객이 받아들이는 공포의 효용은 반감되기 마련이다.
한편 이용주 감독은 이런 ‘보이지 않는 공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름의 독특한 공간감각을 주입함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불신지옥>은 무서움의 근원을 기복신앙에 기댄다. 영화의 장르는 오컬트 무비, 즉 신비주의와 초현실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의 여동생이 실종되면서 그녀의 행방을 추적하는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감독이 영화의 주배경이 되는 로케이션으로 채택한 낡은 아파트 단지는 동생이 거주했다가 사라진 공간으로서,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공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라는 질문과 답을 반복하게 한다. 온 몸에 음습한 기운을 품고 있는 기묘한 구조의 아파트는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주거’라는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벗어나 영화의 비밀을 목도한,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온 몸으로 품을 공포 공작 공간으로 재인식된다.
이것은 지하실 도주 신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주인공은 동생을 찾기 위해 핸드폰 불빛에만 의지한 채 지하실로 내려가지만, 도리어 누군가에게 쫓기는 형국에 처하게 된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무언가 존재한다.
주인공은 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쓴다. 어둠의 공간이 캐릭터와 시퀀스를 장악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에서 공포가 극대화하는 장면은 다음과 같다. 실종된 동생 사건을 담당한 형사가 아파트 주변을 탐색하던 중, 복도에서 심상치 않은 여자와 맞닥뜨린다. 여자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관객들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장면의 충격은 계속된다. 좁고 기다란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턱, 하고 입을 벌리면 그 안에서 우리가 두려움 속에 기다리고 있던 공포의 근원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폭발적인 긴장감이 연출된다. 엘리베이터의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고정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복도의 연장선상에 예상치 못한 또 한 칸의 공간이 창출된다. 끝인 줄 알았는데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힘으로서 영화는 공포 영화 장르의 법칙을 뛰어넘으며 무한한 공포 창작의 가능성을 띠게 된다.
이렇듯 이용주 감독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창출하기 위해 선택한 ‘공간 재창출/조합법’은 인간의 근원적 공포심을 건드리는 호러무비 장르를 위한 적절한 선택이었음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