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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Movie [타이드랜드(Tideland)]

엘리스가 가져다준 미술적 상상력


<타이드랜드>(2006)는 <브라질: 여인의 모험><라스베가스의 혐오와 공포><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 등 광기의 역사에 집착해온 테리 길리엄(Terry Gilliam) 감독의 신작이다. 그가 전작인 <그림형제>를 찍을 당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과의 지긋지긋한 힘겨루기 끝에 매일 아침 속도감 있는 감각적인 작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다짐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이 영화다. 주인공의 현실도피적인 상상력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영상과, 열 살 남짓한 소녀를 독립적인 성의 주체로 상정하는 설정 등 그의 독특하고 도발적인 영화적 취향은 이번 영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1살 소녀 ‘질라이자 로즈’. 로즈는 마약중독자인 히피 부모 아래서 학교도 다니지 않고 머리만 남은 바비인형 친구들과 조숙한 상상력을 키우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약물과용으로 사망하고, 로즈는 아버지와 함께 상상 속의 나라 ‘유틀랜드’로 떠난다. 하지만 그들이 다다른 곳은 이미 폐가로 변한 시골 할머니 집. 그날 밤 아버지마저 약물에 취해 죽어버리고, 로즈는 애꾸눈의 마녀 같은 이웃 델과 그의 동생 디킨스를 만난다. 보호해줄 이 하나 없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녀에게 현실은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그녀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는 것을 거부하고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마약에 취해 세상을 떠난 부모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웃을 맞닥뜨리는 소녀의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동화 속 삽화 같은 아름다운 화면으로 가득하다. 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장면은 아버지와 함께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향하는 신뿐이다. 그 외 배경으로 등장하는 세트, 등장인물의 의상은 알록달록하고 키치적인 색감으로 채워졌다. 이는 로즈에게 닥친 어두운 현실과 선명하게 대비되며 11살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동시에 영화 속 서사는 소녀의 위험한 상상력을 통해 아름다운 영상으로 재조명된다.

미술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화면은 유틀랜드로 상정된 할머니 집. 감독은 스스로 이 장면을 미국 사실주의의 대가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Wyeth)의 작품에서 차용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와이어스가 평범한 인물이나 삶의 소재를 통해 형이상학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한 점, 꿈속이나 기억속의 사물들을 특유의 상상력을 동원해 내면세계로 이끌어 낸 점 등은 영화를 관통하는 감독의 시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와이어스의 대표작인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 한 여인이 언덕 위에 있는 농가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이룰 수 없는 이상을 갈망하는 인간의 한계와 고독을 사실주의 화법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 로즈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독특하고 기괴한 상상공작소로 재탄생한다.

 

 




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것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이다. 1865년 루이스 캐럴이 출간한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책이 발표된 영국 빅토리아 시대 당시 동화나 동시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드물게도 아이들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주기 위한 책이었다. 처음엔 아동 문학으로 간주됐지만 점차 학자들은 마약, 프로이트, 섹스, 아동 성애, 정치, 논리학, 수학을 비롯해 다양한 관점으로 이 책을 분석했고, 특히 그 풍부한 상상의 세계는 전 세계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3월 개봉 예정인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의 오프닝은 로즈가 책의 일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환상과 모험으로 가득한 동화속세계는 로즈에게 유틀랜드이며, 주인공 앨리스는 로즈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로즈가 그녀에게 닥친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삶을 신비로운 모험이 가득한 앨리스의 세계로 왜곡하는 것은 영상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황량한 벌판은 로즈에게 닥친 척박한 현실을 상징하며, 애처로울 만큼 상상의 세계에 집착하는 그녀의 왜곡된 정신세계는 아래와 위가 전도된 나무를 통해 드러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예술가들에게 미술적 상상력의 확고한 근간과 예술적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을 통해 초현실을 표현하는 부부 작가 제리 울스만(Jerry Uelsmann)과 매기 테일러(Maggie Taylor)는 사진을 통해 기억과 꿈을 재생시키는 작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녀의 작품 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에서는 앨리스의 꿈 속 모험담이 구체적으로 시각화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타이드랜드>에서 감독이 앨리스의 세계를 훔쳐와 소녀의 환각적 상상력을 표현하는 화면 구성 방법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은 잿빛 하늘과 안개 속에 싸여있는 어두운 실내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하고, 흐트러진 카드는 이상한 나라로 떠나는 여정을 나타낸다. 소녀가 입고 있는 노란색 드레스는 앨리스의 꿈을, 푸른색 리본은 현실을, 부풀어 오른 드레스 자락은 신비의 세계를 암시한다. 또한 앨리스가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토끼는 작품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동물이다. 비단 이 시리즈뿐만 아니라 소녀, 벌, 물고기 등 몽환적인 소재를 주로 사용해 꿈의 풍경화를 그려낸 그녀의 작품은 모호한 상상력이 빚어낸 모순과 신비의 세계로 가득 차있다.

 

2010.01.18
조숙현(editor)
퍼블릭아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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