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개막식장을 움직인 배창호 감독의 감동적 축사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의 백미는 단연 배창호 감독의 축사였다. 더러는 기립박수를 쳤고, 더러는 파이팅을 외치는 등, 열렬한 환호로 멋진 축사에 응답했다. 아마도 두고두고 회자 될 개막식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축사 전문을 옮겨 싣는다. 현장에 있던 사람만 듣고 기억하기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현재 시네마테크의 위치와 역할과 소망을 함축시킨 명문이기 때문이다(이 축사는 배창호 감독의 억양과 제스처와 청중의 뜨거움을 현장감으로 느끼면서 들어야 제대로 감동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감흥이 덜 할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신 여러분께 새해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 극장에 오려면 멀티플렉스의 고소한 팝콘냄새가 아니라 돼지머리 고기 냄새가 풀풀 풍기는 비좁은 순대 골목을 지나야 합니다. 지난 60년대 말인가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 이 허리우드 극장이 최초로 개장돼서 최신영사기를 갖춰 떠들썩하게 개봉한 <전쟁 프로페셔널>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그때도 이 순대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오래된 극장에 몇 해 전부터 시네마테크라는 귀중한 공간이 자리 잡아 이제껏 일반 극장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개성 있는 감독들의 영화들이나 고전들을 비디오나 DVD나 PC모니터나 휴대폰이 아닌, 스크린으로! 원판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의 도서관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습니다.

요즘 거대한 자본과 최신 과학기술이 결합에 만들어진 한 편의 3D 방식의 영화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크나큰 호응을 얻으면서, 미래의 영화는 3D 영화일 것이라고 언론매체와 영화 산업계는 기대와 흥분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히 위안거리로 생각하는 대중들의 눈과 귀를 최대히 즐겁게 하려는 시도들과 노력의 결실은 이제 영화관을 게임 체험장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은 앞으로도 당분간 성행하리라 여겨집니다. 영화는 과학과 자본의 결합일 뿐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벌써 천 몇백년 전, 로마의 한 철학자는 “무지한 자는 예술의 쾌락을 음미하고 현명한 자는 예술의 의미를 음미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최신 유행영화들이 극장 의자도 흔들어 진동을 느끼게 하고 연기도 피우고 냄새도 맡게 하더라도, 그 체험은 일회성의 육체적인 자극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를 통한 진정으로 강력한 체험이란 감독이나 작가가 자기의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느낀 체험을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해서, 관객의 생각과 마음을 깊고 넓게 확장시켜주는 그런 체험입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단순히 게임 체험장의 역할뿐 아니라, 영화라는 표현매체의 즐거움을 통해서 인생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학교이자 도서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잘 연출된 영화는 일부러 입체안경을 끼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마음과 감각으로 3D, 4D의 흥미체험, 현실세계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관객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맑고 투명한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매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다양한 영화들과 프로그램을 10년 가까이 소개해 오고 있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늘 놀라움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영화도서관의 사서가 되고자 하는 이분들이 그토록 바라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하루빨리 세워질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성원해주시기 바라며,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즐겁고도 진지한 데이트 같은 이 친구들 영화제의 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배창호)

 

※ 본 기사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웹데일리에 실린 글을 재인용했습니다.

 

2010.01.16
네오이마주(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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