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이환에게 2009년은 가장 바쁜 해였을 것이다. 세 편의 장편소설을 출판한 김이환은, 2009년인 올해 위즈덤 하우스, 쇼박스, SBS에가 공동 주최한 장편소설 공모전 ‘제 1회 멀티문학상’에서 『절망의 구』라는 작품으로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유명 작가 이외수가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고, 1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고료가 첨부된 공모전이었기에 『절망의 구』 당선 이후 김이환에게 쏟아진 세간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화제 속에 출판된 『절망의 구』 열풍이 조금 잠잠해질 무렵 서울독립영화제의 예심위원 선정 소식을 들었다. 예심 위원 명단에 올라와있던 소설가 김이환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그동안 판타지 그리고 장르 소설가로 익숙해져있던 ‘소설가’ 김이환의 모습이 ‘독립영화애호가’ 김이환의 모습으로 변환되어 느껴지기 시작했다. 판타지소설과 독립영화의 중간 지점에서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던 김이환은 『절망의 구』 이후 바쁜 스케줄을 잠시 미뤄두고 서울독립영화제로의 애정을 표출하기 위해 2009년의 마지막을 독립영화들과 지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수많은 독립영화들에 둘러싸여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을 소설가 김이환이 궁금했다.

강민영(이하 강): 서독제의 경쟁 예심은 처음이라 알고 있다. 혹시 다른 영화제에서 이와 비슷한 심사 경험이 있었나?
김이환(이하 김): 예전 인디다큐페스티벌 10주년 때 신작을 안 뽑고 10년간의 상영작 중에서 몇 편을 추려 상영했었다. 그때 관객/평론가/감독 세 팀으로 나뉘어서 상영작을 선정했는데, 그때 열 명 정도 모여서 토론했던 기억이 있다.
박정애(이하 박): 이번 서독제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작품이 있었나?
김: 한 편인가 두 편인가 있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만장일치는 정말 어렵다. 만장일치가 있었는지 아니면 다섯 표까지는 거의 만장일치라고 보고 나머지 한 분을 설득해서 본심에 올린건지 확실하지 않다.
강: 본 영화의 편수가 거의 사백 편이 넘었다고 알고 있다. 극장 상영이 아니라 DVD를 받아 모니터로 봐야했을 것 같은데 극장에서 보는 것 보다 힘들지 않았나?
김: 장점과 단점이 각각 있다. 극장에서는 집중이 더 잘되지만 집에서 편하게 보면 하루 종일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며칠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 극장에서는 그렇게 못한다. 나 같은 경우는 집에서 보는 게 편하다. 다른 일하다가 영화보고, 또 일하고 할 수 있으니까. 극장에서는 밥 먹는 시간 빼곤 영화에 매진해야하니 힘든 편이지.
강: 사 백편에 달하는 영화들을 모두 보는데 얼마나 걸린 건가? 보통 서독제의 심사는 공모 중에도 이뤄진다고 알고 있는데.
김: 말씀대로 공모 중간 중간에도 영화를 봤다. 총 기간은 한 달이 넘었던 것 같다. 한 달 중 3주는 바쁘게 매일매일 봐야했고, 나머지 기간엔 좀 여유 있게 심사했다. 3주는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지. 마지막엔 합숙 훈련도 한다. 며칠 동안 모처에 들어가서, 하하. 합숙훈련이 엄청 도움 되었다. 합숙 아니었으면 다 못 봤을 것 같다. 그렇게 모두 보고 막판엔 회의를 13시간정도 했다.
강: 개인적으로 단편영화를 심사했던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데, 단편영화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그게 그거 같고 약간 뒤죽박죽인 경우가 있더라. 그런 어려움은 없었나?
김: 물론 있었다. 내가 놓친게 있나 싶기도 하고. 즉흥적으로 재미가 느껴지는 게 좋아 보이니까 그게 고민이었다. 영화가 하도 많으니까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영화들만 치중해서 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되게 어렵더라. 지금도 고민이다. 내가 좋게 본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가 맞나 싶기도 하다. 그 고민을 계속해서 안고 간다.
박: 심사를 할 때 심사용 DVD만 중점적으로 보는지 아니면 감독의 경력이나 프로필 등도 같이 보는지 궁금하다.
김: 영화만 보기에도 정신없으니 자세히 보진 않는다. 하지만 종종 작품의도가 중요하긴 하다. 그런 텍스트들이 결정적인 건 아닌데 영화를 보고나서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필요하다.
강: 많은 영화들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어떤 경향 같은 것이 눈에 띄지 않나. 작년엔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중심을 이뤘는데, 올해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김: 올해는 참 충격적으로 ‘88만원 세대’와 ‘개발’, 두 개의 단어가 키워드였다. 예전에는 연애이야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개발 혹은 가난함에 대한 이야기가 ‘연애’를 누른 것이다. 젊은 감독들에게 연애보다 가난이 더 문제 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연애나 여행 등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을 만큼 조여있는 상황. 영화에도 그게 반영된 거겠지.
강: 이번 서독제에 올라온 경쟁작들을 보니 제목에서부터 말씀하신 키워드가 읽히는 작품이 많아서 혹 의도해서 이와 같은 주제의 작품들을 뽑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 의도라기보다는 그냥 경향이다. 결정적인 단면인거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이 개발 중이고 전국의 20, 30대가 모두 88만원세대를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반영이 이뤄진 것 같다.
강: 보셨던 영화들 중에 첫 눈에 맘에 들었던 영화들이 많았나.
김: 본심에 올라간 대부분의 영화들이 맘에 들었다. 이해를 못 하겠다거나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영화는 많지 않았다. 이번에 다큐멘터리 섹션에서 여감독들이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것 같다. <경계도시2>나 <땅의 여자>,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쿠바의 연인> 등등. 단편 쪽은 애니메이션이 강세였던 것 같다. 모두 다 퀄리티를 기준으로 판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고, 대부분 HD여서 DV포맷은 거의 없을 만큼 화질도 좋았다.
박: 영화들의 러닝타임이 점점 길어지는 것도 경향 중 하나라던데(웃음).
김: 갈수록 뽑을 수 있는 영화의 편수가 줄어든다. 한 섹션을 150분 이렇게 상영할 수 없으니까. 전체상영시간은 똑같은데, 영화의 상영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 기승전결이 뚜렷해야하고 길게 이야기가 나열되어야 설득이 되는 그런 시대인 것 같다. 예전처럼 10분 안쪽의 짧은 단편은 설득하기 어려운 듯하다. 3,40분짜리 단편은 정말 흔하고 50분짜리 중단편 영화도 많다. 거의 없다.
강: 본심에 올라 온 영화들 중에 관객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다면?
김: 일단 단편 쪽에서는 올해의 히트작이었던 <남매의 집>이 있었고, <오늘은 내가 요리사>, <속주패왕전>. <마스터피스>등이 좋았다. 애니메이션쪽은 모두 흥미롭더라.
강: 처음 단편부문 본심 진출작들이 올라왔을 때 가장 의아했던게 <남매의 집>이었다. <남매의 집>은 올해 장, 단편 막론하고 엄청나게 이슈를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때문에 만일 서독제서 상영한다면 초청으로 올 줄 알았다. 경쟁에 출품한건 감독 자신의 의지겠지만 말이다.
김: 어쨌든 영화는 영화로 평가되지 않나. 결국은 영화자체의 문제고 이슈나 수상, 이런 건 약간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어도 그게 주를 이루는 건 아니다. 그런 걸 떠나서 <남매의 집>은 훌륭했다. 굉장히 훌륭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테크닉이 돋보였다. 소설이건 영화건 이 정도 테크닉과 문법을 본 적이 없다. 보통 <남매의 집>같은 영화는 감독이 모든 걸 쥐고 있고 관객을 흔들 수 있는 영환데, 이 영화는 특정한 테크닉으로 천천히 관객에게 다가서 긴장을 유발하는 영화였다. 테크닉이 세련되지 않으면 관객은 금방 알아챈다. 관객을 설득하려면 상상의 한계가 굉장히 멀리 나가야 하는데 <남매의 집>은 정말 멀리 나갔더라(웃음). 문제는 그 벗어난 지점에서 다시 봉합을 시도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남매의 집>은 그걸 해 내더라. 정말 쾌감이 엄청 나다.
강: <남매의 집>을 이번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처음 봤는데 참 충격적이더라. 요새 나오는 단편들을 보면 어떤 문제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거나 완전 해체시켜서 지향점이 어디쯤인지 명확하게 짚어내고야 마는 경향이 있다. <남매의 집>은 어떤 문제를 시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 자체를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 분위기로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것이 놀라웠다.
김: 나에게는 쾌감의 영화였다. 장르작가로서 동료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영화 몇 편 있었다. <속주패왕전>같은 경우도 그랬다. <속주패왕전>은 똥 개그, 소위 말하는 화장실유머인데, 그게 갈 때까지 가니까 너무 웃기더라. 만약 <남매의 집>도 연출이 어설펐다면 코웃음치고 지나칠 수 있는 문법이 되었을 거다.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 올해 초부터 강조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최근 단편들을 보면 곡사의 영화나 방금 말했던 <남매의 집>같은 단편들의 에너지가 좀 수혈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곡사의 위치를 너무 과소평가, 혹은 홀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김: 예심하며 느낀 것이지만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도대체 저 감독은 어떤 뭐를 지향해서 밀고 나간 걸까 싶은 게 너무 많고, 저 사람이 믿고 싶었던 감정과 논리가 무엇이었을까 의문될 만큼 의아한 영화들이 많으니까. 좋은 영화 만드는 게 어렵고 좋은 예술가 된다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 곡사 영화가 관객에게 쉽게 이해될 만한 영화는 아니다. 그 영화들이 정말 좋은 건 알더라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만큼 좋은 영화를 이해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 예술가의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예술, 그걸 만든다는 것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렵고. 공부가 되었다.
강: 본심에 올라온 것들 말고 아쉽게 탈락했던 영화들도 있었을 것 같다.
이: 많다. 기계적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예를 들어 10편의 영화를 놓고 보았을 때 영화제에서 틀 수 있는 건 2,3편에 국한되어있다. 그럼 본심에 올리고 난 나머지 7편은 아쉬운 거다. 다 꺼내놓으라고 하면 150편정도 될 거다(웃음).


강: 최근 블로그에 들어가서 글들을 읽으면 예전보다 독립영화 비평이나 단평들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 때문에 그런 건가?
김: 약간 슬럼프인 것 같다. 상업영화의 경우,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서 본 것이 <업>이었다. 독립영화 쪽은 ‘해피투게더! 독립영화’ 상영회 모임을 가끔 나간 게 전부다. 물론 그만큼 소설을 많이 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디다큐나 인디포럼 같은 것들을 놓쳐서 아쉽다.
박: 독립영화들 중에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가 있나?
김: 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는 뺄 수가 없다. 처음 독립영화를 본 것도 다큐서부터 시작했고, 이후 영화를 보는 시선 자체가 바뀌었다. 나는 운동권도 아니었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는데-2004년에 특히 다큐가 굉장히 좋았다- 영화 10편 중 다큐멘터리가 7편인가 그랬다. 그게 거의 다 좋았다. 지금도 회자되는 <진실의 문>도 그렇고 <계속 된다-미등록 이주 노동자 기록되다>등.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정신이 얼얼했다. 집에 가서 뉴스를 보는데 뉴스가 더 픽션 같더라. 다큐의 세상은 이게 아닌데 말이지. 누가 봐도 거짓말들이 널려있는 그게 거짓말인지 예전에는 몰랐는데 말이다.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주변의 친구들보면 다큐멘터리를 다 제일 좋아한다.
강: 중학교 땐가 고등학교 땐가 운동권에 있던 친한 아저씨 한 분이 장산곶매 비디오를 빌려줬었다. 이런 건 볼 필요가 있다, 라고 하면서 화질도 좋지 않은 불법 비디오들을 계속 가져다주곤 했다. 그때 독립영화를 처음 접했지만 이후 수년이 지나고 2004년에 <진실의 문>을 보면서 독립영화 뿐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2004년’하면 어떤 사건들을 막론하고 <진실의 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 <진실의 문> 상영 때 감독님께 질문도 했다. ‘왜 이런 영화 텔레비젼에서 안 해요?’라고 말이다, 하하.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질문이지만. 그때 관점으로는 이런 영화들에 왜 관심을 가지지 않고 공중파서 방영되지 않는지 의아했지. 하지만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왜 그런 것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지. 요즘은 애니메이션도 많이 좋아지고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다만 상업적인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미에 비해 관심이 너무 아쉽다. 발돋움 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박: 폭스나 픽사, 디즈니 등 상업 애니메이션들이 너무 잘 나와서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김: 픽사도 그렇게 잘 만드는데 관객은 고작 100만이 전부다. 미야자키 하야오나 <슈렉>, <쿵푸팬더>가 2,3백만 정도 관람했다고 한다. 그런 기운을 한국의 상업 애니메이션도 끌고 와야 하는데 척박하고 길이 없으니 문제다. 그래도 예전 <타이타닉>의 4,5백만을 <쉬리>가 끌고 왔던 것처럼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강: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에도 독립영화 글을 연재하셨고 네오이마주에서도 독립영화 글을 꾸준히 쓰셨는데, 예전부터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김: 영화는 원래 좋아했고 영화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2002년에 서독제의 초대권이 생겨서 우연히 영화제에 첫 발을 들였고-그때 <안다고 말하지 마라>를 봤다-이후 자원봉사에 지원해 관객심사단도 지냈다. 그때 영화 리뷰를 쓰기 시작한 거다.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영화들이 참 많은데 당시에는 공유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았다. 그때는 막 무언가를 쓰고 싶은 에너지도 있었고 해서 열심히 썼던 거다. 지금 와서 리뷰 수를 세어보니까 대략 150~200편정도 되는 것 같다.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것이 맞아 떨어진 거지.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니 독립영화 쪽에서 연락을 주시더라. 그때부터 청탁도 많이 해주시고, 나로선 영광이었다. 이번에 서독제의 예심을 맡게 된 것도 그런 것들이 이어지면서 하게 된 것이다.
강: 처음 독립영화를 만난 계기가 서독제를 통해서였다니 흥미롭다.
김: 서독제의 자원활동을 3년 동안 했는데 자원 활동을 길게 하려면 우선 영화제가 좋아야한다. 자봉은 영화 못 보니까, 결국 영화제가 중요한 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독제에 개인적인 애정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처음에 예심 제의가 왔을 때도 정말 기뻤다.
강: 앞으로도 많긴 하겠지만, 처음 서독제서 만나고 지금까지 본 독립영화 중에 가장 선호하는 감독이나 좋아하는 작품이 있었나? 말하자면 ‘내 인생의 독립영화’격.
김: 있긴 있다. 질문 받은 적도 많았고. <안다고 말하지 마라>나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 등은 사회를 보는 시선을 바꾼 중요한 영화들이다. 그밖에 장형윤 감독의 애니메이션, 김종관 감독의 단편, 현재 조금 뜸한 최진성 감독과 곡사, 윤성호 등등. 어, 늘어놓으니 한도 끝도 없다(웃음).
강: 독립영화 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문학이나 회화 등이 전반적으로 개발 사회, 실업같은 문제 다루는 것 같다. 직접 쓰셨던 『절망의 구』도 그렇고. 『절망의 구』를 보기 전에 『열외인종 잔혹사』를 읽었다. 일반적으로 세태문학이 많은 것 같다. 작년만 해도 안 그랬는데 말이다.
김: 그런 경향은 이해간다. 『절망의 구』 쓸 때만 해도 환율 때문에 나라가 주저앉느니 마느니 하던 시기였다. 『절망의 구』는 작년 10월, 11월경에 쓰기 시작했다. 그때 하고 싶었던 이야긴 따로 있었는데, 쓰는 도중에 이런저런 사건들이 마구 터져서 글에 반영이 안 될 수가 없더라. 이명박 정권이 그렇게 나라를 풍비박산 낼 줄은 몰랐다. 바운더리가 깨져서 우왕좌왕 난리가 나는걸 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쟁터가 된 것 같더라.
강: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절망의 구』 마지막은 그런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잡아내는 게 굉장히 흥미롭고 독특했다. 말씀드렸다. 책을 읽으면서 참 오랜만에 좋은 한국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절망의 구』도 그렇지만, 작년에 대규모 집회가 있었고, 그 시기를 지낸 작가들이 사회활동이나 사회문제들을 보고 있다가 겨우내 농축시켜 올해 초부터 자신들과 사회의 이야기를 쏟아내더라. 요즘의 문학은 그 시기를 겪은 젊은 작가들의 공통분모가 되는 것 같다.
김: 이번에 촛불 관련영화가 있었는데 결국 최종심엔 올리지 못했다. 그 작품을 못 올려서 많이 아쉽다.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작가들에 사회 문제가 반영되어있다는 것이 이해된다. 환율이나 광우병 같은 공포들, 온갖 공포에 휩싸여있던 것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하는 거다. 『절망의 구』도 그렇다. 정체불명의 구가 가져다주는 공포가 갑자기 내던져진 것이다. 그것도 결국 지금과 같은 사회성에서 시작한 것 같다. 딱 시기가 맞았던 것 같다. 사회도 그렇고.
강: 내년 3월까지 두 편의 장편을 완성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두 편은 어떤 내용인가?
김: 하나는 중심 소재가 뱀파이어인데, 하이브리드한, 『절망의 구』와는 많이 다른 소설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잘 안 나오는 문법들의 매니악한 장르물을 쓰고 있다. 단순 통쾌 호쾌하고 웃긴 허무개그류의 장르소설이다. 원형은 돈키호테를 생각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구상만 하고 있다. 귀엽고 아름다운 분위기의 것을 쓰고 싶다. 아멜리에 같은.
강: 이야기하다보니 갑자기 생각난 게 있다. 올해 초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영화진흥위원회의 몇 위탁/지원관 공모제 전환이 이슈화되고 있지 않나. 예전에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이 인디스페이스도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영진위의 공문이 내려와서 식겁했는데, 사실 그 이후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서 살짝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저번 달 프레시안 김숙현 기자의 글에서도 읽혀지듯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급박하게 돌아가더라. 루머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인디스페이스가 만일 보수단체에 넘어가면 우리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들에 타격을 받을 건 불 보듯 뻔한 일인데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김: 이명박 정부의 압박이 참 무섭더라. 협회, 영화제 등 막론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목 죄어오고, 이젠 대놓고 뺏어가려고 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문제도 있고,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도 그렇고, 특정 영화제도 다 없애려고 하고. 최우선에 겨냥 되는 건 역시 촛불시위 단체들이다. 돈도 못 받고 일만 많이 하는 단체들인데 말이다. 방법을 모르겠다. 분노는 하고 있는데. 좋은 방법 있으면 좀 같이 이야기해보자.
강: 올해 초 진행했던 시네마테크 관객 서명도, 사실 어떤 현실적인 효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관객, 시민이 나선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어느 정도 호소력있고 먹힐 거라 생각했는데, 저쪽에서 본색을 계속 드러나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차단하고 시행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더라. 그게 참 무섭다. 이야기는 했지만 결국 듣지 않았으니 발언도 하지 않은 게 되고. 시네마테크도 그렇고 인디스페이스도 그렇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그 공간들이 없어지면 더 이상 서울이라는 공간이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된다. 관객으로서는 화가 나긴 하는데 해결방법을 모르겠다. 답답하다.
김: 내년이 힘들 것 같다. 내년에 모든 게 확정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쪽은 돈이 안 된다는 걸 알고 그냥 갔으면 좋겠는데(웃음). 돈 되는 다른 것들 찾아갔음 하는데, 어렵다.
강: 특히 이번 서독제에서 지금 문제되는 마구잡이 개발과 비슷한 경향의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더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주변 관객분들 중 어떤 분들은 그런 말도 한다. 인디스페이스에서 하는 서독제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섬뜩하더라. 서독제와 독립영화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사회 문제가 나오니까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웃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만 드리면, 지난 몇 년간 독립영화를 보면서 어떤 장르나 특정 주제 등의 독립영화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었나?
김: 예전에는 뭐라도 흥행이 좀 되었으면 했는데, <워낭소리>가 크게 터져서 그런 건 좀 사그라졌고, 배급 구조가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게 변화했으면 좋겠다. 극장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이 넓게 되었으면 한다. 다양하고 고르게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 아직 미지의 장르의 많지 않나. 실험영화 쪽은 아직도 소개되고 논의되기 어려운 실정이니까. 결국 만드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노력해야하겠다.

진행: 강민영
정리: 박정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