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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좀비가 될 수 있다



언제든 좀비가 될 수 있다 공포영화의 괴물에도 족보가 있다. 뜯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중적인 사랑을 독차지하는(관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괴물의 속성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드라큐라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전통적으로 대표적인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7, 80년대에는 연쇄살인마 혹은 귀신들린 아이 소재가 각광을 받았다. 최근 십 수 년은 좀비가 강세다. 사실 좀비라는 소재 자체의 출발은 40년대까지 올라가야한다. 요즘 영화 속 좀비의 원형은 68년부터 발표된 로메로의 좀비연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할리우드 주류 제작사가 관심가질 만한 소재로 좀비가 언급되기 시작한 건 기껏해야 십 년 안의 일이다.

영화 속 괴물은 현실의 두려움을 반영한다. 흥행을 위해서라도 당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미지가 괴물에 투영된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전에는 송곳니를 가졌든 전기톱을 들었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카리스마적 괴물이 인기를 끌었다. 그와 달리 좀비는 불특정 다수의 비정상 집단이다.

잘 만든 좀비영화일수록 이 같은 속성을 뒤집는다. 비정상을 탄압하는 정상의 폭력을 다루는 것이다. 로메로는 좀비연작을 통해 오래전부터 좀비 자체보다는 그에 향하는 집단 폭력을 조명하며 우리 안의 파괴본능과 파시즘을 우회적으로 지적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진짜 공포는 공권력 혹은 자본과 같은 절대 권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부천영화제에서 공개됐던 <이웃집 좀비>는 매우 잘 만든 옴니버스 좀비영화다. 바이러스에 의해 초토화된 서울에서 벌어지는 여섯 가지 이야기다. 그 가운데 <그 이후...미안해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권력에 의한 좀비 학살과 백신에 의해 세상은 평안을 되찾았다. 그러나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이들은 사회으로부터 따돌림과 멸시를 당한다. 그들은 한강둔치에 모여 소주를 마시며 신세를 한탄한다. 그러다 절규한다. 우리는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폭력을 저질렀지만 당신들은 의지를 갖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나.

당장은 부정하고 싶겠지만, 사실 우리는 언제라도 의지와 달리 좀비가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 계기는 수 년 전에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록일 수 있고, 광장에서 촛불을 집어든 때일 수 있으며, 혹은 살아갈 공간을 박탈당해 절박한 심정으로 망루에 오르는 순간일 수도 있다. 시대와 정권의 정상성에 반하면 괴물이 된다.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의란 비정상 괴물에게 나누어지지 않는 가치다. 그래서 정의는 그것이 가장 필요한 자들에게 늘 상대적이다.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세상의 부조리한 원칙 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가, 슬프다.

 

2009.11.19
허지웅(프리미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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