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지치고 힘들 때면 습관처럼 보게 되는 영화들이 있다. 거창하진 않아도 전대미문의 걸작이 아니더라도 말랑말랑한 이야기와 사랑스런 캐릭터와 소담스런 배경들이 어우러지면서 삶의 휴식을 주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내 경우도 몇 개의 영화가 있는데 그중 으뜸으로 꼽자면 단연 김현석 감독의 <광식이 동생 광태>이다. 혹자는 ‘엥, 고작 그런 영화를?’ 이라고 말할 런지 모르겠으나, 낄낄대다가 가슴 짠해지고 인물들의 행동에 답답해하거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와중에도 감정의 파고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충전 영화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고 내부적으로는 4주년 기념행사 준비와 오프라인 3호 발행이 코앞에 닥친 시점에서, 머리는 복잡하고 글은 암초에 걸린 배처럼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그렇게 침대에 누우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도는 혼란의 한 가운데서 <광식이 동생 광태>를 다시 보았다. 죽음 없이도 질투와 시기와 반목 없이도 억지스런 눈물 없이도 물 흐르듯 흘러가는 광식이와 광태의 시간차 공격을 받는 동안 무장 해제된 마음 한 구석에 영화보기의 즐거움이 다시금 채워지길 기대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기분이 좋아졌고 행복한 느낌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2005년 겨울의 눈 내린 어느 날 처음 보았고 십 수번을 거듭 보았는데도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다는 것에 나는 안도하곤 했다. 아마도 그때마다 아직은 이런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가슴 훈훈해짐을 느낄 만큼의 인간미가 남아있다는 것을 다행스러워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다시 보니, 형제에게 집중했던 이전과는 달리 소소한 재발견의 즐거움도 안겨준다. 이를테면 “여자들은 짐작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라던 이요원의 대사라든지, 대학시절 동아리를 지켜냈다는 이유로 ‘평화봉사단(Peace Corps)’이라는 별칭을 붙여주고, Peace 스테이플러 알을 소품으로 사용하면서 앨버트 하몬드 Albert Hammond의 노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를 선정한 김현석의 세심하고 기발한 연출력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날 밤, (이전까지는 무심코 지나쳐버린) 눈 내리는 밤의 도시풍경을 회화처럼 표현한 환상적인 엔딩 크레딧을 기억하면서 정말로 곤히 잠들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날이 차지고 있다. 가을의 정취를 채 느끼기도 전에 겨울이 밀고 들어올 기세다. 몸이 움츠려들고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오면 소담스럽고 착한 영화가 제격이다. 그래서 매년 가을만 되면 이 영화를 보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이렇게 억지로라도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시작해보려는 의지 때문이라고 말해야겠지. 이처럼 한 편의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때론 정화시킨다. 일상에 지쳐 삶이 시들해질 때 독자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찾곤 하는지 궁금하다. 알려주시라.
저에게는 단연 짐 캐리의 [에이스벤츄라]입니다. 완전 신나요!ㅋㅋㅋ
그나저나 [광식이 동생 광태]라니...편집장님은 여전히 사춘기? ㅋㅋ
편집장님의 글이 마치 제 얘기인냥 공감이 가네요.
최용진씨 '사춘기'를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 거의 매일 답글달기에 도전하는게 아니라, 이 영화, 김현식 감독 제가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편집장님의 글을 읽고 아침부터 마음이 조금이나마 기뻐져서 답글 남겨요. 야구의 시즌이면 늘 김현석감독의 작품들이 생각나요... 아 저도 다시 보고 싶네요. 김주혁의 연기 기억에 남고요...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저는 와이엠씨에이 야구단을 너무나 좋아해요. 잊고 살았던 것들을 기억하게 되는 아침이네요
최용진 님, <에이스벤추라> 저도 좋아합니다. 정애 님 말대로 '사춘기' 우습게 생각 말아주세요. ^^
시원 님, 매일 답글달기 도전하는 거 같은 데요? 저도 <와이엠씨에이 야구단> 좋아해요. <스카우트>도 물론이고요. 잊고 살았던 것들이 기억나는 건 계절 탓이 아닌가 싶어요.
풉- 뭔 말을 못해ㅋㅋㅋ 본의 아니게 사춘기를 우습게 여기는 듯한 뉘앙스가 풍겼다면 사과드..........릴 리가 있나!!! 그건 전적으로 오독의 책임! 난 잘못 없음(휙~ 줄행랑)
김현식은 '비처럼 음악처럼'의 가수 ;;; 김현석 감독의 영화를 보면 닉 혼비의 소설이 생각납니다. 남자를 다루는 방식이 비슷하달까요. [광식이 동생 광태] 개봉 당시 1주일 간격으로 연달아 세번을 극장에서 관람했었죠. 어느 새 제가 영화 속 광식이와 같은 나이가 되었군요
아- 맞아요! 이 영화 보고나서 한동안 귓가에 울리는 ‘Will you go away will you go away will you vanish from my mind’ 때문에 스산했던 기억이.
광식이가 결혼식장에서 ‘세월이 가면’을 부르는 때 울고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합창단이 ‘우-’하고 코러스 넣어주는 바람에 웃어버린 기억도. 또 ‘당기세요’를 나도 모르게 밀고 나갈 때 ‘광태’를 떠올리곤 했죠.
일상에 지쳐 삶이 시들어질 때 저는 주로 좀비영화나 공포영화를 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드래그 미 투 헬>과 <파이널 데스트네이션 4>를 보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늦어도 다음주 월요일까지는 <디스트릭트9>과 <팬도럼>도 보려구요. 공포영화가 지닌 생존본능이라는 출발점의 가시화는 미친 듯 살고 싶은 의지를 불타게 하고 한없이 나약해지는 의지를 제거시키는 (제 안의) 매커니즘을 작동케 하죠.
은화 님, 맞아요. 저도 <광식이 동생 광태>를 본 후로 건물 문을 당기거나 미는 것에 예민해졌거든요. 그나저나 생존본능의 의지를 불태워주는 공포영화라니 정말 탁월한 선택인 걸요. 그렇게 본다면 사형수나 사형집행인의 이야기를 그린 <데드맨 워킹> <데이비드 게일> <라스트 댄스> <몬스터 볼> 등은 어떨까요?
네. 말씀해주신 영화들도 삶의 의지를 불타게 해요. 하지만, 약간의 우울증을 동반하는 부작용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