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에 관한 끊임없는 싸움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불편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사실을 토대로 사건을 나열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수동적인 방법보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영화 속의 인물들과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과거’라는 단어를 상기시키게 만든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1986년 신림사거리에서 있었던 김세진, 이세호 열사들의 분신자살 사건의 행적을 좇기 위해 그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난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쓰고 있지만, 여느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 혹은 친절한 나래이션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런 발단 없이 ‘인터뷰’라는 상황에 던져진 여섯 명 남짓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그 날의 이야기를 하나 둘 씩 풀어놓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흘러나오는 역할을 하는 결정적인 역할은 강압적인 느낌이 들만큼 차가운 인터뷰어의 목소리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에는 이러한 차가운 목소리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어가 던진 질문에 대답하며 과거로 이동하는 감정적인 목소리의 인터뷰이들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인터뷰이들이 입을 맞춰 이야기하는 것은 김세진, 이세호 열사의 분신 사건이 있었던 당일의 기억, 그리고 그들이 알고 있었던 과거 속 두 학생에 관한 기억이다. 1986년 4월 28일 당시, 서울대 재학 중이었던 김세진과 이재호 두 청년은 전방입소 반대 시위를 벌이던 중 자신들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을 기도했다. 분신 사건이 일어나고 20년이 훌쩍 지난 ‘현재’의 상황에서, 과거의 김세진과 이재호 청년의 지인이었던 인터뷰이들은 과거로의 역행을 강요받는다. 그들은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곳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가감 없는 인터뷰를 진행한다.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김세진과 이재호 청년을 알고 있었다는 것과 더불어 그 날의 상황이 정말 끔찍했었다는 기억이다. 그들은 머뭇거리며 총알같이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면밀하게 답을 해나가기도 하고 가끔씩 흔들리기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의문들에 대해 하나 둘 대답해나간다.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에겐, 그들의 말과 행동 외에 1986년 그 날의 사건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는 없다. 하지만 관객들은 일반적인 사실 자료 하나 없이 그들의 과거에 뛰어들기를 동참하게 만들던 이 불편한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과거가 아닌 현재로 돌아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20년 전의 두 열사를 알고 있던 관객들에게 다시금 되살아난 그 날의 참혹한 기억, 그리고 두 열사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관객들에게 닥친 새로운 과거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순간이 바로 그 것이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과거의 기억’이라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영화가 불러온, 그리고 영화 속 인터뷰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기억의 파장은 실로 엄청난 것으로 확장된다. 그들은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을 통해 과거의 사건을 공유하게 되고, 그들이 공유한, 그리고 동시에 ‘망각’해버린 과거라는 이름의 단서들은 하나로 융합되어 ‘현재’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과거로 역행하게 만든다. 그들이 묻으려 했던, 혹은 지우려했던 그들의 과거는 사라지거나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도달해 철저하게 재구성되어버린 이미지로 작용하는 것이다. 아들의 죽음에 관해 물었을 때 아무 말을 하지 않던 아버지, 그리고 영화 촬영을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나는 지금 이 영화가 무엇을 담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토로하는 영화과 학생, 마지막에 이르러 끝내 그날을 기억하는 자신에게 카메라를 돌리고야 마는 감독 모두 과거가 ‘지나간 기억’으로 존재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사건에 대해 일방적이고 다소 강제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했던 영화는, 말미에 다다라 그 화살을 관객에게 돌려 치유되지 않은 채 현실과 맞물리는 과거와, 영화 속 그들이 가진 죄의식을 함께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객관적인 감정에서 주관적인 감정으로 변화되어 1986년 ‘그 날’에 관한 기억들이 흘러가려 할 때 즈음, 영화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소음을 내며 끝난다. 인터뷰이들의 기억을 타고 올라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공존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김응수 : 저와 같은 세대도 아니고 저보다 많게는 20년은 젊은 이십대들이 이런 영화를 상영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나름대로 세대가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런 영화가 지속적으로 상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을 못했었는데 초대를 받고는 이상한 감동 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시는 동안, 제가 이 영화를 만들 때 사실은 이런 영화가 되길 원했었어요. 다큐멘터리를 갖고 내가 '다큐가 이런 거다'라고 세상을 정리하거나, 내가 대단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인기를 얻거나 이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책으로 치면 스테디셀러처럼 항시 일 년에 한 번씩 어느 곳에선가 상영이 되고, 도서관에 자료가 있고 이래서 잊혀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온라인에 그 얘기가 기록이 되고 이런 식으로 이 영화가 수용되길 원했었고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작년에 개봉 했었어요. 2월에. 지금 벌써 1년 반이 지났는데, 이 행사 말고도 몇 번의 경험이 있어서 제 생각대로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변성찬 : 죄송합니다. 진행을 맡아 놓고 좀 늦었습니다. 전에 먼저 감독님을 만나서 그런 말씀을 드렸었는데. 저도 80년대 학번으로 80년대를 재현한 픽션이든 다큐든 많은 영화들을 봤던 거 같아요. 그 중에 보면서 가장 괴로웠던 그런 영화 중의 하나였던 것 같구요. 그런 점에서 감독님이 성공하신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부분에 감독님이 묘사하셨던 3월 18일 발족식날 그 분이 김세진 학형인가요?
김응수 : 이재호에 대한 질문입니다.
변성찬 : 저는 이게 분명히 아시다 시피 이재호, 김세진 두 열사에 대한 20년 후의 과거라는 낯선 나라로 가는 다큐인데 보고나서 참 한 편으로 의아스러운 게 두 열사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 내내. 이 다큐가 과거라는 낯선 나라를 굉장히 낯선 형식으로 접근한 다큐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점에서 먼저 감독님과 유운성 평론가에게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좀 듣고 플로어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독님에게는 낯선 형식이었던 만큼 어떤 맥락에 대한 보충 설명을 들었으면 싶어요. 86년 4월 28일 사건 자체의 맥락, 20년 후의 다시 작업을 하시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드는데 그런 말씀을 듣고 싶구요, 유운성 평론가님은 이 다큐가 갖고 있는 낯선 형식이 거창하게 말하자면 영화 미학적인, 윤리적 의미가 뭔지, 이게 감독님 스스로 말씀 하시기에는 낯 부끄러우실테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듣기는 유운성 평론가가 이 영화를 지지하시고 좋아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일종의 말문을 여는 말씀을 좀 듣고 얘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김응수 : 먼저 일목요연하게 제가 역사를 어떻게 본다, 이런 말씀은 장황하고 못 드리겠어요. 정확히 정리를 해서 이런 것이다고 얘기하는 스타일의 사람도 아니고. 영화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제가 지나온 과거, 역사를 볼 때 때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낯설다. 낯설다는 말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할 때 감성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무서운 말이기도 해요. 역사나 자기가 갖고 있는 기억의 공간이나 이런 것을 바라볼 때. 지금 오늘도 제가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명동성당에 갔었는데 사람마다 명동성당에 대한 느낌이 다를 꺼에요. 어떤 사람은 결혼식을 올린 사람도 있을테고, 성스러운 추억이 있을 수도 있고, 근데 저는 항상 그 많은 기억 중에 저희가 대학을 다닐 때 명동성당에서 칼로 배를 찌르고 떨어져 죽은 친구가 있어요. 모르는 사람도 많으실텐데. 여기 와서 일주일동안 밤을 샜던 기억밖에 없어요. 저한테 기억은. 저 좋은 공간을 올라가는데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어떤 사람한테는 똑같은 거 같지만 동시대성을 못 느끼고 사는 거 같아요. 뭐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제가 군중 속에 있을 때 낯설다고 하는 것은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공간이 낯설기도 하고 또는 이 사람들 속에서 제가 낯설다는 생각을 해요. 저 사람들은 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텐데. 그 다음이 10여년이 지나서 우리가 젊음의 시기를 지나고 직장생활, 저는 영화를 하고 그럴 때 정말 다른 기분으로 음악회, 실제 있었던 일인데 (명동성당에) 음악회 왔던 기억이 나요. 그때도 생각해보면 문화를 즐기겠다고 못 들으면 어떻게 되는것도 아닌데 보상적인 열망이 있었던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 스스로도 어떤 경우는 모순적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그렇구요. 또 하나는 서울대에 갔을 때 두 사람의 묘비나 이런걸 보면 내가 저기에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하고, 설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오히려 힘들어요.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막 지나다녀요. 정작 저는 그걸 가까이 하기가 굉장히 힘들더라구요. 그런거 등등 해서 이 영화의 제목이나 전체적으로 끌고 가는 기조는 그런 것이 맞지 않을까. 역사를 다루고 추모를 다루지만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한 사람의 생각이나 시선을 통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이 추모의 문제를 정리하지 못했느냐는 아쉬움과 비판은 나중에 내가 감싸 안기로 하고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영화에 단순하게 심어 넣자는 생각으로 이런 형식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유운성 : 말씀 드렸을텐데, 실제로 저는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오늘 다시 여러분들과 봤는데요, 그 전에 볼 때마다 굉장히 감동을 받고, 오늘 봤을 때는 그 전보다 더 강렬한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엿장수 같은 발언이긴 하지만, 전 이 작품을 2008년에 개봉한 한국영화를 놓고 보면, 유일하게 가치 있는 두 편의 영화중 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한 편이 뭔지는 밝히지 않아도 될 것 같구요. 저는 이 영화에 대해 개인적 애착을 갖고 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하면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저 보다 여러분과 감독님과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구요.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좋은 다큐가 있었지만, 상당히 다른 영역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작업하는 다큐 감독 중에서도 깨기 힘들었던 한 가지 관습이 있었던 거 같아요. 자신이 찍고 있는 사람들, 증언을 해줄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다큐에서유지하고 갔던 거 같아요. 공감을 한다거나 감정적 교류를 나눈다거나. 근데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과거가 낯선 나라인 것만큼이나 영화를 찍고 있는 감독 자신이 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인간적 교류, 실제로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촬영하면서 사이가 안좋아졌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최소한 이들과 나눴던 인간적 관계를 이용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통해서 역사를 이해했다고 착각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식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다큐들을 볼 때 실패한 다큐는 저는 이런거라고 봐요. 아 이 사건이 이러이러 했구나, 이런 식으로 이해가 되는 순간, 그 영화는 역사를 무덤에 쳐 넣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역사를 다루는 영화라면 관객들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영화에서 보지 못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여백과 공백이 있다고 만들어야 하고, 영화를 본 다음에 내가 그게 뭔지 궁금해서 애타게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려는 의지를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역사적인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 점에서 굉장히 훌륭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구요. 변성찬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영화에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김세진, 이재호의 사진 한 장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영화 후에 직접 찾아보셔야 할 거고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분들과 관련된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지 않는 이상 절대 완벽한 상을 이 영화만 갖고 그린다는 건 불가능하죠.
이 영화는 영화 자체가 인터뷰죠. 인터뷰가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않고, 제가 이 영화를 정말 여러 번 봤지만, 아무리 인터뷰 조합을 잘해도 정확히 이 영화만 갖고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오히려 이 영화에서 중요한건 두 열사가 왜 죽었고, 어떻게 죽었고, 어떤 파장이 있었고가 아니라 그 죽음의 현장에 사실은 없었던 분들이에요. 잘 보면. 늦었거나, 아니면 다른 장소에 있었거나. 그래서 그 때 있지 못했다는 거 때문에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이 기억하는 아주 이상한 것들이 등장합니다. 전방입소가 뭐냐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등사기, 타버린 만년필, 운동화, 플랭카드, 뿔테안경 이런 식의 사물들을 둘러싸고 어떻게 되면 역사적으로 흔히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담론들이 되게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에둘러 말하기, 잊어버린 걸 갖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환기시키는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구요. 현장에 대해 가장 종합적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감독 자신이고, 감독이 스스로 카메라 앞에 나와 얘기하는 게 영화 안에 삽입이 돼 있구요.
여러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강요가 없다는 것, 기어이 역사에 대해 알려주겠다, 일깨워야 겠다는 태도보다는 궁금하게 만드는 것, 특히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게 이 작품에서 두 열사를 다루는 방식이나 <물의 기원>을 봐도 감독님은 한국영화사에서 특별한 위치에 계신 분 같아요. 우리가 역사를 기억할 때 이상하게 한국 영화가 기억하기 좋아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80년대는 광주라고 하는 아주 특권적인 시간, 혹은 굳이 따지자면 6·29선언, 70년대는 박정희 말기죠. <박하사탕>, <그때 그사람들>, <화려한 휴가> 등. 그 시기에서 조금 앞으로 나가거나 뒤로 물러서는 걸 되게 두려워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감독님의 경우 80년대 한복판을 어떻게든 기억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되게 소중하고, 그 시기를 기억하는 데 있어서 특정 아이콘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 어떻게 보면 여기에서 만들 때 보면 김세진, 이재호에 대해 이 자리에서 영화를 통해서 처음 접하는 분들도 있을꺼라 생각이 듭니다. 이한열 열사나 굉장히 이런 그 시대의 사진이나 보도, 여러 담론을 통해 아이콘이 된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통해 기억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우리 사회가 이만큼까지 변하는데 무언가 움직였고 일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완전히 날아가거나 배재된 사람을 통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이런 걸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근에 발표한 <물의 기원> 같은 경우도 다른 방식의 역사쓰기를 생각하고 계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변성찬 : 플로어로 마이크를 돌리기 전에 유운성 평론가님 말을 들으면서 제 자신이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저는 처음에 스크리너를 집에서 보면서 이게 오륜 줄 알았어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톤이 다르잖아요. 필터를 쓰셔서 질문하실 때 마치 지하 깊숙한 곳에서 에코를 울리면서 질문을 하시고, 거리를 분명하게 두셨는데. 그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유운성 평론가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피사체와의 냉정한 거리두기를 미학적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동시에 그것이 피사체와 특히 마지막 부분에 직접 나오신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정서적 인력 때문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냉정하고 거리를 둔 것 같지만, 조급한 느낌도 있었거든요. 어떤 느낌이었는지, 굳이 그런 선택의 배경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김응수 : 영화에 대해 최소한의 신비화도 안하는 게 좋은거 같아요. 조급함. 그건 계산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기 보다는, 나중에 결과로 보니까 그렇게 된 거 같구요. 사실 제가 인터뷰를 할 때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빨리 영화를 끝내야 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내가라도 해서 끝내야겠다. 그래서 조감독한테 니가 질문해라. 근데 사실은 인터뷰어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걸 다 알고 있어야 하고, 저 사람이 어떤 얘길 하면 어떻게 끌고 가야하나 이런걸 해야하는데 사실 어렵죠. 저는 인터뷰어 없이 본인이 혼자 막 한거에요. 저 장소에서, 제가 찍히는 부분이 앞에 들어가든 뒤에 들어가든 영화가 여기서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기서 3일을 찍었어요. 굉장히 더워요. 화상 다 입고. 저 몰골이라는 게 영화를 말해주는 거 같아요. 제가 마르긴 했지만, 영화에서의 저 정도는 아니거든요. 저때는 정말 인간적으로 힘들었어요. 어후,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해서 이걸 아직 끝내지 못하고 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렇게 영화를 사람들한테 질문을 하고 감정을 잡아내고 끌어내고 얘기를 했는데 최소한 그 사람들이 나중에 자기 찍힌 모습을 보고 영화화 돼서 공개되는 걸 누구나 원하는 건 아니에요. 뭐라고 할까요. 그래도 내가 살아있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게 많아요. 그래서 나중에 찍힌 사람이 찍은 사람에게 안되겠습니다, 하면 어쩔 수 없는거죠. 초상권도 있고 인격도 있는건데. 근데 제가 그걸 하면서 모든 문제가 사실 다 없어졌어요. 마지막에 모아서 보여줬는데 암말 없더라구요. 특히 여자분 같은 경우에는 안 그런거 같지만 화장 지워진 걸 가장 신경써요. 그게 사람이고 맞는 말이죠. 자기가 뭐 대단한 역사적 증언을 한다고, 화장 지워지면서까지 할 필요는 못 느끼거든요. 두 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런거죠. 그래서 제가 내가 더 추하다, 모든 그런 문제가 정리가 되고 했고. 아주 조급한 선택이었던 거 같습니다. 좀 더 덧붙이면, 관객 분들도 그렇고 영화가 순서에 맞춰 짜여져 찍힌 것 같다고 말하거든요. 공간도 그렇고. 저도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물로 시작해 물로 가고, 학교로 시작해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색감의 변화, 공간의 확장 같은 것들이 주로 선택한 물과 죽은 불이라고 하는 감정적인 보완 같은 거, 꺼린다는 거죠. 실제로 끄고 싶다는거죠. 그런 것도 사실은 어떤 계산이라기 보다는 그게 무의식중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찍을 때는 너무 더워서 시원한 데 찾아간거죠.
변성찬 : 불에 대한 공포가 있으시다는 인터뷰를 본 거 같은데, 왜 배경이 온통 물이었는지 조금 이해가 가네요. 그리고 유운성 씨에게는 간단한 질문 하나, 아까 두 편 중 나머지 한 편이 뭐죠. 진짜 궁금하네(웃음)
유운성 : 내년 이맘때쯤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변성찬 : 내년 이맘때 다시 한 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묻고 싶은 게 많지만 관객들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두 분께 질문하고 싶은 게 계시면 손을 좀 들어주시죠. 준비되실 때까지, 감독님이 사람 정말 많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상상마당에서 개봉하실 때 관객과의 대화 하셨나요?
김응수 : 그 땐 이렇게 많이 오지 않았어요. 대단한 기록인거 같고, 많이 오셨어요, 진짜.
변성찬 : 인디포럼의 힘입니다(웃음). 준비되시는 동안 그러면 조금 전에 계획에 따라 시간 순서로 이런 말씀 하셨는데 전체 구성에서 보면 또 특이한 거 중 하나가 엔딩타이틀이 중간에 올라가죠. 그리고 뒤에 세 분의 인터뷰가 붙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게 시간 순서도 아니고, 감독님과 현장 스탭이었던 분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뭔지.
김응수 : 그거는 이제 영화가 뭐 한 단락이 끝나고 전환된다는 것도 있었고. 한 단락이 끝나고 영화를 찍은 사람들로 말하고 얘기하는 게 변해나가는건데. 저와 조감독이. 영화를 찍고 했던 사람들이 영화를 다시 진행한다는 의미도 있고. 또 하나는 사실 어떤 분들이 그런 얘길 해요. 영화에서 대단한 발견을 한 것 마냥. 아, 저 순간을 잡으려고 오래 카메라를 들고 있었군요. 갑자기 사람들이 감정이 팍 솟을 때 대단히 드라마틱하고 멋있는 것처럼. 사실은 그런 건 별로 저한테 중요하지 않는다는거죠. 울컥한 게 영화의 결정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경계하는 건 사람들이 그렇게 빠지는거였어요. 실제 다큐들이 그런 식으로 소통하려고 하잖아요. 그게 정말 소통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리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 정말 다큐를 봐야하는거죠. 사실은 자막이 나오는 그 부분이 비도 오고, 아들을 기다리는 것 같고, 뭔가 제가 보기에 의도성이 강해요, 쇼트들이. 거기에 제 나름대로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실제 그걸 아쉬워하는 분도 있어요. 제 친구나 후배들이 아주 그냥 전통적으로 확 감동 주는 다큐들을 좋아하는 분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요, 그걸 좋아하는 분이죠. 영화 거기서 비가 쫙 올 때 아버님 인터뷰가 끝나고 영화가 끝나면 좋았을 텐데, 왜 니가 갑자기 나와서 영화를 완전히 망쳤다고, 화를 내더라구요. 사실 그런 분들도 있거든요.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지점인거죠. 영화가 쭉 진행되다가 가장 근접 당사자에게 영화가 끝나면서 아무 말할 수 없음, 이런 걸 갖고 가면서 뭔가를 기다리고 비가 오고, 이렇게 끝날 수 있는건데 그런데 위험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서 그렇게 했던거고. 이 영화가 좀 더 보시고 냉정하게. 그리고 이거 영홥니다,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관객 1 :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렇게 말투가, 현장에서 질문할 때 톤을 달리했잖아요. 현장에서 인터뷰를 할 때는 다른 방식으로 질문했겠지, 그거에 맞춰서 다시 녹음실에 와서 냉정한 말투같이 다시 이어붙인 건 아닐까. 사운드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경찰서에서 심문하는 거 같은. 그 때가 몇 시였습니까. 사무적이고 딱딱한. 현장에서 정말 그렇게 녹음을 했는데, 사운드 효과만 달리한건지, 궁금합니다. 답변들도 인터뷰 받는 사람, 진술하는 사람도 말이 그렇게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나온건지, 진술할 때 말투 같은 느낌을 받았고 특이했어요.
김응수 :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희가 촬영하는 과정에서 마이크가 한 개 였어요. 인터뷰 하는 사람에게 마이크를 주고 저는 맨 목소리로 해서. 저는 실제 목소리 톤이 그래요. 문어적이고, 시나리오 쓸 때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사람들 이렇게 말하지 않는데...그게 제 말툽니다. 듣는 사람도 그냥 받아들여요. 녹음하는 과정에서 다시 녹음한 건 맞아요. 근데 질문을 그대로 녹음했어요. 이쪽에 마이크가 없어서 들리긴 하는데 키우면 영화 사운드가 성립이 안돼요. 녹음은 현장과 비슷한 야외에서 했고, 영화적인 공간의 이질감을 분리하기 위해 에코를 넣었구요. 또 하나 제 말투가 그렇다는거는 맞고, 또 하나는 왜 그렇게 얘기들이 나올까 하는 건 제가 그 사람들이나 동료들이 가지는 독특한 문화인거 같아요. 특별히 쎄다고 생각하지 않고, 워낙 인생을 험하게 살아서 그 정도는 부드러운거죠.
또 저 인터뷰 질문은 제가 대충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많이 시켰어요. 어떤 훈련이냐면 보통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잖아요. 이상하게 빠지는 함정이 있어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거든요. 근데 그걸 못 견디는거죠. 그래서 자꾸. 저는 어떤 생각이었고, 당시 한국의 상황은 어땠고, 저는 대학생의 한사람으로서 이런 현실을 좌시하지 못하고, 80년대가 어쩌구 저쩌고 이렇게 나옵니다. 많이 빠지는 함정이에요. 그렇게 나오지 않으면 불안한거죠. 자기 얘기를 막 해야 하는 거고. 그거 우리 정말 하지말자고 약속했어요. 미안하지만 니가 굉장히 수세적인 것 같은 사실만 얘기하면 그게 힘 일꺼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객관적으로 얘기해라. 그게 왜 견디기 힘든거거든요. 자기 생각이 아니니까. 우리 나이 또래 되는 사람들이 그런 함정에 많이 빠져있어요. 저도 그렇고. 보통 서로 약속에 의해서 했기 때문에 가능 했던거고, 글들을 봤을 때도 다섯 장을 써주면 네 장은 제가 다 필요 없는 거, 이것만 얘기해, 내가 필요한 건 이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변성찬 :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어서, 취조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제가 당황스럽고 놀랍고 새로웠던 것은 바로 그 취조분위기였는데 두 번째 보고나서 보니까 취조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써 인터뷰어들이 가장 당황할 때가 구체적인 사실을 물을 때에요. 중심적인 내러티브가 아니라 구체적인 걸 질문할 때 가장 당황하는 걸 봤거든요. 대개 경찰서에서 조사 받을 때 합을 짜놨는데, 중심 내러티브는 다 입력이 돼 있는데, 주변에 아주 디테일한 사실들을 물어볼 때 가장 헷갈리고 이렇게 되는데. 인터뷰어 분들이 공통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굉장히 고약하시게도 진짜 취조를 하셨던 것 같고, 그게 이 영화를 만들면서 견지하고자 했던 충돌하고 싶었던 감독님의 태도나 생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질문 해주세요.
관객 2 : 감독님께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되길 바라셨다고 했거든요. 충분히 공감하는데, 한 가지 의문점은 객관적이길 바라셨다면, 왜 돌아가신 열사분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했던건지. 그건 객관적일 수가 없는거잖아요. 따른 의도가 있으신지.
김응수 : 사실은 제가 많이 난관에 빠졌던 게 그런 게 있습니다. 서로 명확하게 이래서 저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양해해주세요 할 수 없는 게, 안해도 이상하고 해도 이상한 상황이에요. 사람이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도 이걸 꼭 써야 되겠다고 하고 생각하고 하는 지도 잘 몰랐고, 당신들 자식들 얘기를 찍는다고 하는데 정작 부모님에게는 가지도 않고 제안도 안했다는 걸 그러면 안되는거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 분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연락이 안오면 안 응할텐데, 어 니가 원한다면 해야지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잖아요. 한 분을 하면, 또 네 분이잖아요. 두 분이 죽었으니까. 참 힘들어요. 본인들한테도 하면서도 이걸 꼭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안하면 더 이상할 거 같아요. 한다고 하면서 진짜 우리한테는 오지도 않고 이렇게 생각하실수도 있고. 그래서 그냥 뚜렷한 목적 없이 한 거구요. 그 중에 세 분은 너무 많이 울었어요. 보고 있으면 남자 분인데 우는 거 보면 쓸 수가 없어요.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그래서 저 아버님이 가장 굳건하시고 나름대로. 대표적으로 쓴 거죠. 편집을 하면서도, 양해를 하시겠지 했어요. 영화는 객관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제 솔직한 답변입니다. 그리고 넣는 게 좋겠다는 건 뭐냐면 영화를 사람들과 얘기를 할 때 그런 거 있잖습니까. 내가 원하는 걸 완벽하게 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걸 영화에서 보여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요. 조금 편하게 가도 되는거 있잖습니까. 그런 생각도 좀 했었구요.

변성찬 : 끝내 못참으시고 거기다 엔딩 타이틀을 넣으셨잖아요(웃음). 네 분이 다 살아계시는군요. 사전에도 얘기했는데 그 장면이 울림이 컸던게, 20년이 지났거든요. 가령 박종철, 이한열 열사 부모님들 같으면 힘드셨겠지만 어떤 말씀 하셨을 꺼 같아요. 근데 두 열사가 갖는 독특성이랄까, 이런 문제가 있었을 것 같고. 더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 3 : 작년에 바로 이 자리에서 영화를 봤었어요. 저를 포함해서 4분이(웃음).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은 그래도 인디포럼에서 주최하기도 하고, 영화 공부하시는 분들도 있는 거 같고. 기념사업회 쪽에서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아쉬워하지 않을까. 어쨌든 여기 앉아 있는데, 저도 이제 개인사적으로 10여년 전 공간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니까 을지로, 종로, 이 세계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더라구요. 감독님은 과거가 낯선 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저는 현재가 낯설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게 한 만 하루정도 유지되더라구요. 다음날 정도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다시 저는 현재로 돌아오고, 영화를 왜 처음 보러 갔을까. 도대체 그 때 많은 분들이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 의미가 지금 뭘까 라는 게 궁금했고, 영화에서도 그걸 찾고 싶었던 거 같아요. 근데 아무리 영화를 제 마음 속으로 복기를 해도 참 그랬었어요. 인터뷰에 응한 분들이나, 감독님도 과거에 20년 전의 사건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의, 많이 일그러지고 왜곡된 기억들이죠. 그런걸 모아놓은 이정도의 성과, 혹은 그걸로도 충분할 수 있는데, 제 개인적으로 정말 찾고 싶었고. 그래서 1년 동안 궁금했어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꼭 와본건데, 그런게 묻고 싶었어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우리가, 감독님 개인적인 의미여도 좋고, 사회적 의미라고 얘기하셔도 좋은데. 어떻게 그 시기를 단순히 진술하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뿐 아니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건지.
김응수 : 정말 사적인 얘기를 할께요. 저희가 역사 속에서 살고, 사회속에서 살고, 그러면서도 개인으로 사는데, 정말 저는 어느정도까지를 연관짓고, 어느정도까지를 내가 공동체 일원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건지, 어느정도까지 내가 개인으로서 행복과 뭔가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건지. 물론 책에서는 떨어져 있지 않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떨어져 있죠. 근데 제가 이 영화를 통해서도 그렇고, 바로 그런 것이 삶이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절에 했던 것에 대해서 오히려 너무 거대한 의미와, 커다란 희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거 있잖아요. 그게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잘못하면 팩 돌아서거나,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허무해지거나, 뻔뻔하게 뉴라이트가 되버린다거나, 그런 식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인생에서 저런 것들이 그냥 삶이었고, 나는 그 중의 한 일원으로서 살았었던 것이고, 그리고 세상이 빨리 변하지 않고, 빨리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거고. 그렇게 쉬운거면 어떻게 수천년간 인류가 이렇게 살았겠어요. 저는 그런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가장 소박하게 자기 중심을 지키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거겠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 담벼락이라도 보고 욕이라도 하면서 저항하라, 최소한 할 게 없으면. 뭐 그런 하나하나의 것들이 모여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거고, 누군가가 나타나서 대안을 제시해주고 그 사람이 정말 난세의 영웅이 된다면, 내가 그렇게 될 수 없지만 옳으면 지지하고 전 그런거 같아요.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는 나름대로 철없던 거 같기도하고, 격렬하게 80년대를 보냈지만, 제가 제일 이해가 안됐던게 그런부분이거든요.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변혁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들 있잖아요. 그거와 내 삶이 무슨상관인가, 내가 그걸 원한 건 아닌데, 그냥 저항하고 살았던 과정이었을 뿐이지 당장 10년안에 뭐가 될것이다 하는 착각은 없었고, 제가 의아스러웠던 것은 쓰지도 않았던 이상한 개념이 난무하는겁니다. 좌파, 우파 지식인 같은. 그건 유럽에서나 하는 말인데. 사람들이 그걸 되게 즐기는 거 같아요. 어떤 측면에서. 제 말이 무슨 말인지, 그래서 저는 그런 문제를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변성찬 : 또 혹시 질문.
관객 4 : 영화 잘 봤구요, 저는 영화에 등장한 25살 학생 정도의 연령이 되는 현재를 살고 있는 학생입니다. 제 입장에서 봤을 때,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 졌는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까, 제가 배낭여행 갔던 시리아에서 본 영화들보다는 훨씬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가 자라왔던 분신이라든지, 신념을 위해서 죽었던 사람들이 선배나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질문이 두가진데, 첫째는 낯설음의 농도가 완벽하게 낯설음만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낯설음을 넘어선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현재와의 연결고리가 있으니까요. 운동권 학생들도 있고. 또 하나는 25살 학생이 등장하는데, 그 학생이 말하는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는 말이 너무 인상 깊었는데, 인상 깊었지만 사실 그 의미를 모르겠어요.
김응수 : 첫 번째 말씀하신 거에 대해서는 사실은 제목은 과거는 낯선나라다지만, 말씀하신대로 그냥 낯설게 봐달라고 한 건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저는 굉장한 절실함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밖에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 보는 분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절실하게 알아줬으면 하는 애원도 있어요. 사실은 그 애원의 방식이 저렇게 밖에 할 수 없는거죠. 과거는 낯선 나라인거 같은데, 말하는 배면을 봐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그게 쉽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굉장한 울림이나 충격으로 다가와서 작지만 오래 지속되는 흐름으로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진짜 그 절실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나 이런걸 갖고 말씀하신대로 어떤 영화든 다큐든 계속해서 저는 저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남는 게 아닐텐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하는걸까. 알고 하는 걸까. 저게 정말 재밌고 절실해서 하는걸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조심성이라는 게 그럼 도대체 어떻게 절실히 알도록 노력시킬 것인가, 그런 감정이 있구요. 또 하나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까 좀 알겠다고 하더라구요. 좀 이해가 된다고. 근데 뭐 여전히 자기는 모르겠다고 하더라구요.
변성찬 : 솔직히 저는 그 스탭이 그 얘길 할 때, 감독이 하고 싶은 질문을 스탭 시킨 건 아닐까했어요.
김응수 : 그런건 아닙니다 (웃음).

변성찬 : 농담이었습니다. 잠깐 안내말씀 드리구요, 관 사용 시간이 10시 35분까집니다. 그래서 영화 끝나고 진행이 1시간 정도 됐는데, 아쉽지만 5분 정도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구요, 그리고 끝으로 아까 유운성 평론가가 단지 이 작품 뿐 아니라 김응수 감독의 영화세계, 영화적 질문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런 부분에서 꼭 봐야 할 김응수 감독의 추천작 두 편을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참,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뒷풀이가 있습니다. 옆의 시네마 호프라고 하는 맥주집이 있습니다. 그리로 가셔서 바로 시작하고, 끝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질문 있으시면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관객 5 : 저도 학생인데요, 생각을 해보면 당시에 있었던 80년대 사건은 우리에게 부스러기나 고통의 파편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해요. 끊임없는 정체성의 잃어버림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90년대에는 그럴듯하게 해볼만 한 게 없었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은 어떤지. 과거는 낯설다고 하셨잖아요. 물론 그게 낯설다고만은 하지 않으셨지만.
김응수 : 무서운 질문을 하셨네요(웃음). 개인적으로 뭐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얘기를 하면 너무 거창해지고 아니면 아니고, 무책임한 얘기 같지만, 뭐라고 해야하나. 사실 생각을 안해봤습니다. 죄송합니다(웃음).
변성찬 : 역시 계속 영화나 만들어야 하실 거 같아요. 큰 거 걱정하지 마시고(웃음). 그럼 아쉽지만, 여기서 마치구요 마지막으로 유운성 평론가를 통해서 김응수 감독님 답변을 대신 해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웃음).
유운성 : 대신 답변을 해주면, 제목이 과거는 낯선나라다고 the fast is the strange country인데, 낯설다는 건 어쨌든 또 멀다는 거 하고는 좀 다른 거죠. 먼 거는 낯설 필요도 없는거죠.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낯설다는 거는 최소한 내 옆에 있는데 뭔가 나한테 꺼림칙한 무언가가 있다는 겁니다. 과거가 낯선 나라라면 지금 MB정부 현재는 외국의 나라쯤으로 느끼고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추천작 말씀하셨는데 아무래도 김응수 감독님 최근의 영화들, 이제 장편 6개 만들으셨는데, 추천작 고르면 나중에 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일단은 최근의 작품들의 결국 기본이고, 제가 볼 때 감독님이 아무리 거부하셔도 결국은 항상 그걸 다시 쓰고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96년 데뷔작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구요, 또 이런 자리에서 질문할 때 본인은 극구 부인하시는데 본인의 목소리가 취조하는 목소리 같다는 거, 본인은 그걸 좀 아셨다고 짐작할 수 있는 영화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입니다. 주인공 김준기 씨가 회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취조하는 형사 목소리가 감독님 목소립니다(웃음). 오늘 여기서 이거 보시고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보시면 많이 듣던 목소리가 익숙하게 들려오는 구나 하실 거에요(웃음). 다른 한 편은 아무래도 올해 전주국제 영화제에서 공개했었고,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어떤 자리를 통해서든 보여질 <물의 기원>이라는 작품인데요, 어떻게 보면 <과거는 낯선 나라다> 보다도 훨씬 더 미학적으로 형식적으로 더 멀리 나갔고, 그런만큼 또 이렇게 이해되기에 힘든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 영화 보고 싶다고 많이 떠들고 다니면 어떤 극장에서든 개봉하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로서는 제가 보기에도 한국의 극장 문화에서 지금까지 나온 한국영화 중에 가장 개봉이 힘든 영화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웃음),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꼭 보여졌음 좋겠고, 그 영화를 갖고 또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이니까, 끝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끝낼께요. 좋은 한국영화 요즘에 많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멋진 엔딩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다스려주고, 정리해주는 게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뺨을 후려치고 나오는 끝나는 거두절미하고 너 지금까지 무슨 생각하고 있었니 하고 뒷통수를 훌치는 듯한 과감한 엔딩, 감독님 본인이 음악적인 것에 관심이 있으셔서 그런거 같기도 한데 현대음악에서 이런 식의 느닷없는 구조들이 있긴 한데 영화에서 찾기 힘든 형식이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면 중의 하나고, 아무것도 없는 엔딩일 수 있다는 것. 그 후려침.
변성찬 : 마지막으로 감독님.
김응수 : 개인적으로 감사드립니다. 극장에 많이 오시고. 얼굴도 모르시는 분도 있지만, 비용이야 추렴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뒷풀이 자리에 많이 오셔서 즐거운 시간 갖고 영화대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삶을 즐기고(웃음)
변성찬 : 다음 영화 기대되구요, 아쉽지만 이 자리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